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베를린올림픽 ‘손기정’
‘2020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9월 5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쉽게도 손기정(1912~2002)과 황영조 같은 마라톤 영웅은 왜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글이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마라톤 시상식 사진을 보고 스테판 뮬러라는 분이 ‘손기정과 남승룡’에 대해 쓴 글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 글을 우리나라 독일 유학생이 번역해서 소개해 화제가 됐다.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무력에 의존하는 나라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년간 한번도 자주성을 잃어본 적이 없는 기적에 가까운 나라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나라 대신에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굉장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1936년 히틀러 통치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두 일본인이 마라톤 경기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하였다. 2위는 독일인이었다. 그런데, 시상대에 올라간 이 두 일본인 승리자들의 표정이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불가사의한 사진! 무엇이 이 두 승리자들을 이런 슬픈 모습으로 시상대에 서게 했는가?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은 이웃한 일본인에 대해 ‘죽음을 찬미하고 성에 탐닉하는 영리한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불행히도 이 인간적인 품위를 중시하는 자부심 강한 민족이 ‘강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침략, 즉 식민지로 떨어지고 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개인의 이상을 희생하고 말았고, ‘손(孫)’ 과 ‘남(南)’이라고 하는 두 청년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두 청년은 달림으로써 아마도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청년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조국 한국의 태극기 대신에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가 있었고, 스탠드에도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태극기는 대부분 나라의 그것이 혁명, 투쟁, 승리 또는 위대한 황제의 문양인데 비해 우주와 인간과 세상 모든 것의 질서와 조화를 의미한다.
스탠드에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 숙인 채 한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 하의 한국 신문 동아일보는 이 사진 속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만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폐간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탄압의 방법으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해방되고, 강요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또 한번의 무서운 전쟁을 치른 후 한강의 기적을 이룬다. 한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유일한 민족이다.
마침내 한국은 스페인보다도 포르투갈보다도 더 강력한 경제적 부(富)를 이루고 만다. 그리고는 1988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불과 50년!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개막식 성화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년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워했던 승리자 손기정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연출가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소식이다. 한국인은 인류 역사상 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폭력과 같은 단순함이 아닌 놀라운 정신력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금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라는 젊은 마라토너가 스페인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과 독일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축제의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하략)
독일인 뮬러씨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에 한없이 자랑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도 맨날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 여와 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아옹다옹 하지 말고, 대동화합하며 좀더 큰 그림을 그려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