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올림픽 육상 이야기⑫] 육상선진국을 향한 제언

높이뛰기 우상혁은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최고 기량을 발휘해 4위에 입상, 찬사를 받았다. 대부분 국민에게 우상혁이란 이름은 낯설었을 것이다. 전체 육상경기 종목 중 한국에서 올림픽 참가자격을 얻은 선수는 높이뛰기의 우상혁과 장대높이뛰기 진민섭 두 사람밖에 없었다.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어느 스포츠 영화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IOC 위원장이 “승부를 떠나서 정정당당하게 경기해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를 한다. 코치가 선수에게 “저건 거짓이야. 스포츠는 무조건 이겨야 해”라며 또 당연한 소리를 한다. 둘 다 맞는 얘기이다.

1980년대 초 미국에 처음 유학 갔을 때 LA올림픽이 열렸다. 국가별 순위를 매길 때 금메달 위주로만 따지는 한국과 달리 전체 메달 수로 하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한국에서는 금메달 1개가 은메달 10개보다 앞선다고 주입받았기 때문이다. 유럽도 미국과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유럽은 “모든 메달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올림픽정신에 합당한 것인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따지면 한국은 15위이고 전체 메달을 따지면 12위다. 어느 것이 한국의 국가순위인가?

이번 도쿄에서 한국의 공식 목표는 단순하다. 총 메달은 관심 없고 금메달 7개다. 어떤 근거로 설정했는지 모르지만 국민들도 이번 올림픽에서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왜 금메달 수가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금메달 수를 예상할 수는 있지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금메달에 집착하는 것과 금메달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했다고 기뻐하거나 달성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스포츠 후진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앞으로 어떤 편견에서도 벗어나 자유롭게 최선을 다하면서 올림픽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과거 은메달을 따고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에서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금메달이 아니라 은메달, 동메달에도 아쉬울 수는 있지만 실망하지 않고 올림픽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상혁이 높이뛰기에서 4위에 오르며 메달을 따지 못했는데도 온 국민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언제나 마찬가지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도 나타난 방송사의 편중중계는 나같이 육상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참 지켜보기 힘든 일이었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 100미터 결승전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결승전을 한국에서는 실황으로 볼 수가 없었다. 그 시간에 한국팀의 구기경기들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구기경기 대신 육상을 중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3개의 공중파 채널과 3개의 종편 채널 어디에서도 육상결승전을 중계하지 않았다. 문제 아닌가? 편중된 TV중계는 편향된 스포츠 의식을 만든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육상경기를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TV 중계에서도 외면한다면 한국에서 육상경기가 설 틈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 대회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한국의 구기경기보다 4년마다 보는 세계최고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장면을 한국의 육상팬들은 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육상이 발전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도쿄올림픽 육상 높이뛰기에서 우상혁은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최고 기량을 발휘해 4위에 입상, 찬사를 받았다. 대부분 국민에게 우상혁이란 이름은 낯설었을 것이다. 전체 육상경기 종목 중 한국에서 올림픽 참가자격을 얻은 선수는 높이뛰기의 우상혁과 장대높이뛰기 진민섭 두 사람밖에 없었다.

장대높이뛰기 진민섭

2020년 3월 호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빌린 장대로 5.8미터를 뛰어서 장대높이뛰기 한국신기록을 세운 바 있는 진민섭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재복 이후 33년만에 도쿄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그는 도쿄올림픽 예선에서 5.5미터를 가볍게 넘었으나 5.65미터를 시도하면서 허벅지 부상으로 5.65미터 3차시기는 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상혁 못지않게 큰 기대를 했던 진민섭이었기에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우리가 한국 육상을 중흥시킬 의지가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답은 나와 있다. 현재와 반대로 하면 된다. 육상대회를 수시로 중계해주고, 나아가서 육상대회 우승자에 대해서 상금도 걸어서 관심 유발과 우승 열망을 북돋워 줘야 한다. 요새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별이 없다.

이와 함께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같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육상경기를 수시로 열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해주면 좋겠다. 일회성이어선 육상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없다. 그 외에도 육상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기량의 선수들에 대해 메달권이 아니더라도 우대해 줘야 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후진국일 때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 선진국에 유학 갔듯이, 자라나는 육상 꿈나무들을 육상 선진국에 보내서 기량을 키워야 한다.

이런 일들이 진행될 때 야구나 축구뿐 아니라 국민의 사랑 받는 육상 스타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일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기업도 후원의 결과가 나타날 때마다 크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절로 생긴 몇몇 돌연변이 천재들에게 의존해서는 한국은 영원한 육상 후진국으로 남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이 세계 최빈국일 때 태어나서 선진국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목격하고 체험했다. 경제에서 기적을 이룬 우리가 마음먹으면 육상 선진국도 꿈은 아닐 것이다.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부족 상태에서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아시아의 다른 나라보다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도 여타 아시아 국가보다 체격이 크고 체력도 뛰어나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미 육상 선진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일본과 중국 못지않은 아시아의 육상 선진국을 꼭 이루길 바란다. 육상은 스포츠의 기초종목이다. 육상에서 한발 한발 전진할 때 육상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도 강국이 될 수 있다. 과실은 단맛도 있고 쓴맛도 있다. 지금처럼 단맛만 빼먹으려면 영원한 육상 후진국을 벗어날 길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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