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올림픽 육상 이야기⑧] 아시아 육상의 영웅들
높이뛰기 우상혁 장대높이뛰기 진민섭에게 박수를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올림픽의 종목들을 살펴보면 태권도, 가라데, 유도를 제외한 모든 종목은 서양에서 비롯되었다. 더구나 육상종목에서 체격과 체력에서 서구 선수들이 당연히 유리했고 육상을 지배했었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선수들이 육상 장거리를 제패하더니 지금은 육상의 전 종목에서 아프리카 혹은 미국과 자메이카를 비롯한 남미 흑인 선수들이 육상계를 지배하고 있다. 아시아 선수가 육상에서 우승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지난번 아시아 육상의 영웅들로 투해머에서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일본의 무로후시를 들었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육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일본은 세단뛰기에도 특별히 강했는데 1932년 난부 추헤이는 LA올림픽 세단뛰기에서 우승했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다지마 나오토는 세단뛰기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다지마 나오토는 멀리뛰기에도 참가하였는데 유명했던 제시 오엔스와 루츠 롱의 대결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제시 오엔스가 구름판을 넘었다고 계속 파울을 지적당하며 탈락할 위기 순간에 히틀러의 기대주였던 루츠 롱이 오엔스에게 다가가서 “구름판 10cm 전에 뛰어서 흠을 잡히지 말라.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오엔스는 이 조언 덕에 긴장을 풀고 경기에 집중했고 루츠 롱을 넘어 우승할 수 있었다.
루츠 롱은 오엔스와 함께 팔장을 끼고 시상식을 걸어 나와 그의 손을 잡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이후 히틀러의 눈밖에 난 루츠 롱은 강제징병을 당했다. 오엔스는 전쟁터의 롱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루츠 롱은 1943년 전쟁터에서 사망했다. 히틀러도 끊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우정의 이야기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장대높이뛰기에서 일본의 니시다와 오에는 똑같은 높이를 넘어 공동 2위가 되었다. 두 선수는 서로 은메달을 양보했다. 조직위원회는 일본대표팀에게 결정을 의뢰했다. 일본대표팀은 논의를 거쳐서 니시다에게 은메달을 수여하기로 했으나 1932년 LA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땄던 니시다는 오에다는 끝까지 오에에게 은메달을 양보하였다. 결국 두 선수는 메달을 반으로 잘라 은메달과 동메달로 이루어진 우정의 메달을 만들어 나누어 가졌다.
일본은 단거리에서도 육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아시아 선수가 가장 차이가 나는 100미터에서도 드디어 메달을 따는 쾌거를 기록했다. 런던올림픽 4x100미터 계주에서 동메달을 땄던 일본대표팀은 리우올림픽에서는 특별한 바톤터치 방식을 개발하여 미국과 캐나다를 물리치고 자메이카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보통 4x100미터 계주는 100미터 강자들을 보유한 나라에서 약간의 연습 후에 경기에 참가해서 금메달을 딴다. 그러나 일본은 9초대가 한명도 없었는데도 순수 전략만으로 육상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팀 자메이카와 호각을 이루며 은메달을 땄다. 세계 육상의 역사에 새겨질 만한 일이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일본대표팀의 선전이 기대된다.
여자 단거리에서도 일본과 대만의 여성이 세계신기록을 세운바 있다. 오래 전 1928년 일본의 키노에 히토미는 100미터 경기에서 12.2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1970년 대만의 치칭 역시 11.0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치칭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기수로만 참가했다.
중국의 쑤빙텐은 도쿄올림픽 100미터 준결승 3조에서 9.83초로 1위를 기록했다. 그는 2015년 아시아 선수 최초로 10초의 벽을 무너뜨린 바 있다. 아쉽게도 결승에서는 9.98초의 기록으로 6위에 올랐다. 우승은 준결승 3조에서 쑤빙텐에 이어 3위로 결승에 진출한 이탈리아의 마르셀 제이콥스가 차지했다. 쑤빙텐이 준결승 기록만 유지했으면 은메달을 따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도쿄올림픽 여자 100미터와 남자 100미터 경기는 한국에서 아예 중계도 하지 않았다. 남녀 200미터 그리고 엄청난 세계신기록이 나온 남녀 400미터 허들경기 모두 한국에서는 볼 수도 없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리고 중국의 류상은 아시안게임 3연패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110미터 허들에서 금메달을 딴다. 2006년에는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2008년 베이징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부상으로 기권하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 육상의 영웅은 높이뛰기의 바심이라고 할 수 있다. 바심은 카타르 도하에서 태어난 순수 아시아인이다. 그는 이미 런던올림픽 동메달, 리우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차지하고 2017년 런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 2019년 도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챔피언 자리를 지켜낸 세계 최고의 선수다.
현재 높이뛰기의 세계기록은 쿠바의 소토마요르가 1993년 독일 슈투트카르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록한 불멸의 기록 245cm이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우상혁은 2.2미터를 넘어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올랐다. 일본의 도베 나오토도 결선에 올랐다. 결선에서 도베는 일찍 탈락했으나 본인의 기록이 231cm인 우상혁은 233cm를 2차시기에 넘었지만 놀랍게도 235cm를 1차시기에 넘어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235cm를 1차시기에 넘은 사람은 우상혁을 포함해서 3명밖에 없었다. 우상혁이 충분히 메달권에 진입한 것으로 보였으나 235cm를 1차시기에 실패했단 벨라루스의 네다세카우가 235cm를 포기하고 237cm에 도전해서 1차시기에 넘은 탓에 우상혁을 제치고 동메달을 수상한다. 235cm와 237cm를 1차시기에 넘은 바심과 이탈리아의 탐베리는 공동 금메달을 수상하게 되었다. 아시아 선수로서 불리한 체격과 체력을 극복하고 우승한 바심과 아깝게 동메달을 놓쳤지만 4위에 오른 우상혁에게 축하를 보낸다.
2020년 3월 호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남에게 빌린 장대로 5.8미터를 뛰어서 장대높이뛰기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운 진민섭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재복 이후 33년 만에 도쿄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그는 도쿄올림픽 예선에서 5.5미터를 가볍게 넘었으나 5.65미터를 시도하면서 갑작스런 허벅지 부상으로 5.65미터 3차시기는 눈물을 머금고 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상혁 못지않게 큰 기대를 했던 진민섭이었기에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도쿄올림픽 육상에 진출한 선수는 남녀 마라톤과 경보를 제외하고는 이 두 선수밖에 없었다. 이미 육상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서 올림픽 육상경기마저 중계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데도 최선을 다한 우상혁과 진민섭 그리고 모든 육상선수들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