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모내기 밥’ 박노해

남도땅 모내기 밥. 요즘도 이런 상이 있을까마는…추억이라도 좋다, 우리가 지나온 치열하되 따스했던 삶들 아니런가?

봄을 타는가보다
며칠째 입맛이 없다
문득 맛난 음식들이 떠오른다

내 인생에 가장 맛난 음식들은
유명한 맛자랑 요리집도 아니고
솜씨 좋은 울 엄니가 차려준 음식도 아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모내기할 때
논두렁가에 둘러앉아 먹던 그 모밥이다

못줄을 잡고 모를 쪄 나르던 어린 나에게도
뜨끈한 고봉밥 한 그릇이 주어지고
감자와 무토막을 숭덩숭덩 썰어넣은
도톰한 서대조림 한 그릇이 돌아왔지

논두렁 가운데 버드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한 손에는 살짝 말려 매콤하게 조린
졸깃졸깃한 서대조림 한 마리씩을 들고
웃고 격려하고 일 잘한다고
서로 칭찬하며 함께 먹던 모내기 밥

이 봄에 입맛이 없는 것은
내 입의 문제만이 아니다
절기에 맞춰 함께 땀 흘리던 삶,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고
서로의 재주와 힘을 나눌 수밖에 없던
그 두레노동에서 뿌리 뽑혀
봄이 와도 대지에 맨발을 내리지 못한
시멘트 바닥을 달리는 내 삶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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