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포토보이스 #41] ‘감사의 달’ 5월과 ‘펜’과 ‘연필’
[아시아엔=김희봉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현대자동차인재개발원, 교육공학 박사] 무엇인가를 기록할 때 펜(pen)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기념일이나 마감일 등이다. 대개는 특별한 상황이나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수정할 일이 없거나 변하지 않는 내용들이다. 물론 지워지거나 희미해지면 안 되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래서 펜으로 적는 내용들은 비교적 분명하고 서로가 잘 볼 수 있도록 드러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반면 연필(pencil)로 적는 내용들이 있다. 이는 펜으로 적는 내용과 달리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여러 가지 사정이나 상황 혹은 진행과정에서 변경의 여지가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누군가와의 약속이나 글의 초안 혹은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의견 등이 해당된다.
일상에서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일에 국한한다면 펜과 연필 중 어떤 것을 사용할지는 크게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필기구가 다르고 내용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 당시 손에 잡히는 필기구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적어야 할 내용이 ‘일’이 아닌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더군다나 사람에 대한 인상이나 감정 혹은 평가 등을 적고자 한다면 펜이 아니라 연필을 사용해야 한다. 혹여나 그 내용이 부정적이라면 더더욱 펜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에 대해 펜을 사용하여 적게 되면 스스로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낙인효과(stigma effect)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낙인효과란 어떤 사람이 부정적으로 찍히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보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살펴본 펜의 특성이 잘 지워지지 않고 자국이 남으며 다른 사람들도 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어떤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감정을 펜을 들어 마음속에 남기는 것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이와 같은 내용들을 마음속에 적고자 하거나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마음속에 적히고 있다면 펜이 아닌 연필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 대해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으로 생겨난 부정적인 선입견 또는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잘못된 인식이나 감정을 남기기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펜의 속성을 지닌 상태에서 적어야 하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아니라 긍정적인 내용들이다. 장점이나 강점도 포함된다. 더 나아가 무엇보다 펜으로 적어 지워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크든 작든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내용이고 감사해야 할 내용이다. 그 사람으로 인해 스스로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면 그것 역시 펜을 들어 자신의 마음속에 남겨야 한다.
옛말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꾸로 새기는 경우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접하게 된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거나 손해를 가져다 준 사람 혹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머릿속과 마음속에 각인하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여지없이 뒷담화의 소재로 소환된다.
한편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사람들은 이야기의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속에 펜으로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는 뒷담화의 자리에 그들을 초대해보자.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라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덕분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해보자. 자주 생각하고 표현할수록 마음속에 각인될 것이다.
‘감사의 달’ 5월이 마무리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감사를 전해야 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나의 마음속에 꾹꾹 눌러 새겨 놓아야 할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더 늦기 전에 표현해보면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