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싸나이’ 테너 임웅균의 ‘음악과 인생’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국민테너 임웅균은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다. 그런데, 흔히 예술가 특유의 자존심 앞세운 고집 같은 게 아니라 자기 절제에서 오는 것들이다.
음대교수 30년 오로지 음악과 제자 사랑, 그리고 나라와 겨레의 긍지를 높이는 공연이라면 무료 혹은 기껏해야 교통비 정도만 받고 기꺼이 출연한다.
국립대학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성악) 교수인 그는 수험생이나 대학 재학생 레슨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임 교수는 “국립대 교수로서 금지된 것을 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극히 상식에 충실할 뿐”이라고 말한다.
반면 그는 ‘돈 안 되는 일’에는 발벗고 나선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여름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학교폭력추방 자선음악회에서다. 당시 한국기자협회장을 맡고 있던 내게 임 교수는 “정부에서 어린이날 공휴일과 기념일을 해제하려고 한다. 함께 막아보자”고 했다.
얼마 후 정부방침은 백지화되고 어린이날에는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 일로 그는 미국 대통령위원회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며 지금껏 내게 고마워 한다. (사실 나는 뭐 대단한 도움이 된 것도 없는데, 그의 과찬을 받을 때면 쑥스럽기만 하다.)
그 후 임 교수는 내게 보탬 될 일이 뭐 없겠냐고 종종 물었다. 2007년 11월 필자가 창립회장을 맡고 있던 아시아기자협회(아자) 후원의밤에서 그는 10곡 가까운 음악을 선사했고, 앙드레김 선생 등 여러분이 아시아기자협회에 적잖은 후원을 했다. 임 교수는 단 한푼의 사례도 사양했다.
임웅균 교수는 ‘내 마음의 스승과의 만남’ ‘아자 총회’ ‘아자 이사회’ 등의 자리에 빠짐 없이 참석해 축가를 부르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뿐인가? 2018년엔 필자 부탁으로 충북 진천까지 3시간을 아랑곳 않고 달려 이상설 선생 추모행사에서 음악을 기부했다.
임시정부수립 99주년을 맞아 서울, 부산 등지에서 열린 ‘백년의 약속’ 무대에 예술총감독으로 온몸 바쳐 책임을 다한 것은 그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터다.
그는 ‘겨레’ ‘나라’와 같은 단어에 유난히 ‘필’이 꽂히는 사람이다. 돈독한 교육자 호국영웅 집안의 후예라고 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타고난 공공의식과 애국심의 발로라고 나는 감히 얘기할 수 있다. 그는 1997년, 서양음악 110여년간 전국 200여개 대학의 음악학과에서 채택되지 않아온 한국 가곡을 4학점 짜리 정식 커리큘럼으로 확정시킨 장본인이다. 이에 한국작곡가협회는 그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이 무렵 그는 문화방송 인기 프로그램이던 성공시대에 예술가 최초로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이 프로는 2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2년 여름 평양에서 이미자 선생 등과 공연한 이야기는 ‘전설’에 가깝다. 북한 청중들은 한동안 넋을 잃고 그의 노래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했다.
서울 뚝섬에서 자라며 ‘도회’와 ‘시골’ 양면을 모두 보고 자란 그는 다섯 수레 넘는 양서를 읽은 책벌레답게 지식과 산경험을 정확·적확한 문장으로 잘 엮어낸다. (최근엔 난독증이 와 책보단 수준 높은 유튜브를 통해 지식 습득을 이어가고 있다.)
임웅균 교수가 2월 16일 저녁 예술의전당에서 정년퇴임 음악회를 연다. 연주자 60명에 합창단 등 스탭만도 100여명에 이른다. 코로나 이후 세계 최초의 대면 음악회가 될 전망이다.
임 교수는 “음악회는 나 스스로에게 바치는 컨셉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전체 2400석 가운데 방역규칙에 따라 742석만 허락된 상황에서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돼 녹화영상으로 팬들은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임웅균 교수에 대해 그동안 알려진 ‘국민테너’ ‘국민성악가’ 외에 무슨 적당한 호칭이 없을까 생각해봤다.
1999년 발매된 음반 ‘사랑하는 마음’의 가사처럼 “나 가진 것을 모두 다 드리고 그대 앞에 그냥 홀로 서리라”처럼 임 교수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사회에 아낌 없이 내놓는 사람이다. 그제나 이제나, 앞으로도 영원히···. 그는 ‘사나이’다. ‘진짜 싸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