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좌우진영 대표 음악가 ‘한유한’과 ‘정율성’은 누구?
[아시아엔=편집국]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아 6월 1일(오후 7시30분)과 2일(오후 4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리는 콘서트&오페라 ‘백년의 약속’이 주목받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2부 가운데 2부 오페라 공연 ‘바람과 구름이 되어’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중 좌?우 진영을 대표하는 작곡가 한유한의 오페라 ‘아리랑’과 정율성의 오페라 ‘망부운’이 하나의 작품으로 각색·편곡돼 선보인다.
이번 행사의 추진위원장격으로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예술총감독을 맡은 임웅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아이디어다. 임 교수는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진영과 세대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조국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꿈이었고 사명이었다”고 했다.
한유한 선생(사진 왼쪽, 본명 한형석 1910년 2.21~1996년 6.15)을 소개하면 이렇다.
부산사람이다. 여섯 살이던 1915년 독립운동가인 부친 한흥교를 찾아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신화예술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시안에서 중국군으로 활동하던 중, 1939년 시안으로 이동해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합류하였다.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었다. 시안 등지에서 ‘국경의 밤’, ‘아리랑’ 등을 공연하여 교민을 위안하고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인 ‘아리랑’을 비롯해 ‘국기가’, ‘압록강행진곡’, ‘조국행진곡’ 등을 작곡하였고 ‘광복군가집 1, 2집’을 발간하였다.
정율성 선생(사진 오른쪽, 본명 정부은 1914년 7.7~1976년 12.7)은 이런 약력을 지니고 있다.
광주사람이다. 스무살이던 1933년 독립운동을 하던 셋째 형 의은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난징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하고, 난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음악공부를 하였다. 난징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하다가 옌안으로 가 루신예술학원을 다니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연안송’을 작곡하였다. 항일군정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인 ‘팔로군행진곡’을 작곡하였다. 첫 곡 ‘오월의 노래’를 시작으로 ‘중조우의(中朝友誼)’, ‘초록빛 조국’, 오페라 ‘망부운(望夫雲)’ 등을 작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