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테너’ 임웅균···파파로티 뛰어넘는 ‘진정한 프로’

[아시아엔=구본홍 AJA 부이사장, MBC 보도본부장·YTN 사장 역임] 한국 테너 가운데 수식어가 가장 많은 가수를 든다면 단연코 임웅균이다. 국내에선 ‘세계적인 테너’, ‘국민성악가’, ‘국민테너’. 해외에선 ‘황금의 테너’, ‘발성과 연기력이 일체가 되어 노래하는 성악가’, 그리고 유학 중에는 <밀라노신문>과 <만토바신문>으로부터 ‘영웅적인 소리를 지닌 천부적인 테너’라는 평가를 받았다. 어떤 이는 노래보다 노래 역사에 더 해박한 성악가로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엔 ‘클라식 대중가곡 선구자’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었다. 이 정도면 굳이 그의 이력을 살피지 않아도 별칭이나 호칭 수식어로 우리는 이미 그를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음악적으로 세계적이고 천부적인 테너인지는 그의 외모나 언행을 봐서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 일상에서의 임웅균은 성악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엉뚱하게 사회계몽운동가나 언어학자, 역사가 또는 청소년 선도 사회활동가, 교육혁명가, 도시계획 전문가 같은 대화에 열을 올리는 스타일이다. 사실 그런 분야에 관한 엄청난 독서로 해박한 지식을 뽐낸다.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것도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결코 반응이 없으니 직접 서울시장이 돼서 그 이상을 구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고 보니 사람들은 그가 성악이란 본연의 천직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잠시 다른 길을 엿보기도 하고, 갑상선이 나빠져서 노래를 잠깐 쉰 적도 있고, 방송과 스크린으로 종횡무진 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소명(calling)을 저버린 적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연마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 역동적인 노력이 있어서 그는 오늘 어떤 성악가, 어떤 테너도 시도하지 못한 65세의 은퇴를 넘어 인생 2모작을 향해 새롭게 시작하는 콘서트(New Start Concert)를 만방에 고할 수 있는 것이다.

2021년 2월16일 화요일 늦은 저녁,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봄기운 가져오는 우수(雨水)를 불과 이틀 앞둔 그날 눈은 그쳤지만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에 이를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맹위를 떨쳤다.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가는 길 인적이 드물었다. 날씨도 춥고 코로나팬데믹으로 감염 위험이 두렵고 꺼림칙해서 다들 포기한 건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홀로 들어섰더니 충분히 이른 시간인데도 로비는 인산인해였다. 괜한 기우였구나 싶어 견고한 팬덤을 가진 임웅균 테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았다.

관람객 규모를 보니 코로나 방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예술의전당 측에서 철저하게 대비한 듯해서 매우 안심이 되었다. 공연시간이 돼서 입장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전체 2400석이다. 방역규칙에 따라 742석만 허락된 상황이어서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고 했다. 좌석은 두자리씩 건너 앉게 돼 있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팬데믹 상황에서 최초의 대형 대면공연이어서 임웅균 테너나 오케스트라 합창단과 스탭진, 그리고 극장 당국과 관객들 모두에겐 대단히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공연이다. 그런 사실 자체만으로도 모두가 흥분과 기대로 공연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프로그램을 보니 1, 2부 90분 공연에 임웅균 테너가 무려 9곡을 부른다. 65세가 한국의 행정적 정년이긴 하지만 성악가, 더구나 테너로선 67세면 목소리 정년이 한참 지났다.

세기의 파파로티가 70세에 은퇴하겠다고 해놓고, 그 나이가 되어도 계속 무리하게 공연을 강행하였는데, 호흡이 가쁘고 고음을 제대로 내지 못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67세인 임웅균 테너가 최근 콘서트 무대에서 공연한 적이 없어서 소리가 어떻게 나올지 최대의 관심사였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슬그머니 낮아지면서 뉴월드심포니가 너무나도 귀에 익은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서곡)’로 무대를 열었다. 희극 오페라(opera buffa)여서 서곡이 경쾌하다. 젊은 관객들은 만화영화 톰과 제리 풍으로 편곡되었던 것을 연상했을까, 반가웠는지 박수소리가 우렁차다.


이어 4명의 한예종 제자들이 경기도 민요 경복궁타령으로 스승의 퇴임 및 새로운 시작을 경축하였다. 경복궁타령은 가사 중에 시니컬한 부분도 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대원군이 중건할 때 공사 인부들의 힘을 북돋우려고 함께 불렀던 경쾌한 노동요란 것이 설득력이 있다. 장차 ‘음악대웅전’을 중건(重建)하려는 그의 원대한 비전을 축하하는 것으로 해석해봤다.

이어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임웅균 테너가 등장했다. 그는 청중을 향해 80도로 인사한 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고 잠시 만장한 관중을 둘러보았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팬들을 만난다는 것이···. 더구나 코로나팬데믹으로 대면 행사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인데, 비록 한 칸씩 건너 앉아도 이렇게 객석을 꽉 메운 대면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행운인가.

그런 감회와 감동으로 임웅균 테너는 벅찬 감정을 누르며 관객을 천천히 들러보았다. 아마도 대부분이 그가 길러낸 제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그를 오래 아껴온 지인들일 것이다. 그의 북받치는 감회가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달된다. 많이 해쓱해졌다. 턱시도가 헐렁해 보여서 그도 세월을 많이 탔구나 싶다.

프로그램을 펼쳐서 그가 부를 9곡을 유심히 훑어보니, 1부 2부 자신과 찬조 출연자들까지 전 곡이 임웅균다운 치밀한 기획적 배치로 거대한 스토리, 자전적 대서사시를 엮어놓고 있다.

그의 첫 노래는 C. Frank의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이다.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던 세자르 프랑크가 작곡한 종교음악이다. 오르간, 하프시코드, 첼로, 더블베이스를 위한 곡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특히 가사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쓴 찬미가(讚美歌) ‘우리의 신성한 축일에’(Sacris solemniis)의 일곱 연 가운데, 여섯 번째 연 ‘천사들의 빵’(Panis angelicus)을 붙였다. 천사의 빵이 한국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제목 붙었다.

임웅균 테너가 은퇴하면서 주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부활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간구하는 공연 시작 기도로 이 곡을 첫 번째로 선택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원어로 부르지 않고 우리말로 부른 것도 기도의 메시지를 객석에 전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임웅균의 노래는 무엇보다 울림이 크다. 그리고 노랫말이 매우 정확하게 전달된다. 그가 세계적인 테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초고음에서도 저음의 음폭이 유지되고 가사전달이 명료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날도 그의 장기가 여지없이 발휘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67세답지 않게 호흡이나 성량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유의 애절함까지 그대로 살아있다. 혹시나 했던 초조함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객석은 대환호로 그의 여전함을 축복했다.

그가 부른 두 번째 곡은 아일랜드 민요로 만들어진 세계인의 애창곡 ‘You raise me up’이다. 이 곡은 시크릿 가든의 롤프 뢰블란(Rolf Løvland)이 편곡 하고, 브렌던 그레이엄(Brendan Graham)이 가사를 붙인 노래다. 현재 전 세계 가수들에 의해 125번 이상 커버되었으며 이 중에 여러 제목의 한국어 번안곡도 나왔다. 대체로 가수들은 아일랜드 민요풍의 이 노래를 애잔하게 부르려고 한다.

그러나 임웅균은 자신의 성량, 감정으로 꾸밈없이 불렀는데도 가사의 간절함이 짙게 배어나와서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 노래는 성악가로서의 외길만 걷는 단순한 삶이 아니라 온갖 풍파를 겪고 이제 내려놓는 이 시점에서, 피곤한 심신일지라도 인간 임웅균이 주저앉지 않게 해달라는 조용한 외침으로 디가왔다. 특히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에 이르렀을 때 그의 눈빛이 궁금하기도 했다. 아직 남은 길을 가야한다는 스스로의 다짐같기도 하다.

세 번째 곡, P. Mascagni의 오페라 ‘Cavalleria rusticana’ 중에서 ‘Mamma quel vino e generoso’(어머니 포도주가 감칠 맛이 있네요)와 네 번째 곡 Giuseppe Verdi의 오페라 ‘La Forza Del Destino’ 중에서 ‘Fratello…Riconosci mi’(형제여 너 나 알아보겠어) 이 두 곡은 모두 비극이다. 특히 남녀간 사랑과 질투, 오해 그리고 복수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비극이다.

‘안녕 어머니’(Addio alla madre)라는 제목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Cavalleria rusticana’는 삼각관계에 빠진 사나이가 죽음의 결투장으로 가면서 어머니에게 부르는 작별의 노래다.

임웅균 교수가 2007년 아시아기자협회 후원의밤에서 열창하고 있다.

제목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는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거친 기사도’ 정도가 되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이 거침없이 결투장으로 나가는 전통적 기사도’로 의역하는 것이 오페라 내용에 더 적합하겠다.

베르디의 오페라 ‘La Forza Del Destino’(운명의 힘) 중에서 ‘Fratello…Riconosci mi’(형제여 너 나 알아보겠어)는 딸의 사랑을 반대하는 아버지가 딸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투를 신청했다가 남자의 실수로 죽게 되자, 여자의 오빠가 복수를 위해 남자를 찾아 결투를 하고 결국 세 명이 다 죽게 되는 비극이다. 기구한 운명으로 빚어진 비극이어서 극이 무겁다. 자연히 오페라 주역들의 목소리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남자 연인 돈 알바로역의 임웅균 테너의 목소리는 무겁고 처절하였다. 특유의 울부짖는 듯한 애절함은 오페라 무대를 충분히 연상하고도 남을 만큼 리얼하였다. 여인의 오빠 돈 카를로역을 맡은 바리톤 이인규는 오페라 전공자답게 힘 있는 바리톤으로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특히 모든 것을 참회하고 수도승이 된 돈 알바로역의 임웅균이 결투 신청에 대해 감정을 억제하며 수도승으로서의 신분을 지키려고 인내하고 갈등하는 장면은 백미였다. 임웅균의 천재적 발성만으로 관객들을 마치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오페라극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디서 그런 청량하고 웅장한 소리, 그리고 그 긴 호흡이 가능한지 불가사의다.

2부는 다시 제자들이 베르디의 오페라 ‘La Traviata’의 ‘축배의 노래’(Brindisi)로 무대를 열었다. 2부에서 임웅균테너는 ‘밀양아리랑’(진규명), 임긍수의 가곡 ‘사랑하는 마음’, D. Curtis의 ‘Torna a Surriento’(돌아오라 소렌토로)와 ‘Non ti scordar di me’(나를 잊지말아요, 물망초) 등 두 곡의 이탈리아 칸초네(가곡)를 불렀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이탈리아 음악가 에르네스토 데 커티스가 작곡한 나폴리의 노래다. ‘오솔레미오’, ‘푸니쿨리, 푸니쿨라’, ‘산타루치아’와 더불어 고전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가운데 하나다. 이탈리아 가곡 독창회 끝에 흔히 앙코르곡으로 노래하는 ‘오, 나의 태양’(O sole mio)이나 베수비오 화산으로 올라가는 관광케이블카를 노래한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i Funicula) 같은 유명한 노래들이 대표적인 나폴리 칸초네인데, 밝고 경쾌한 곡이 많아 관객들 호응이 좋은 노래들이다. 특히 이탈리아 칸초네는 임웅균 테너에겐 마치 특화된 노래처럼 들린다.

임웅균의 마지막 노래는 ‘Non ti scordar di me’였다. 자신의 테너로서의 일생, 굴곡 많았던 여정을 대서사시로 펼치면서 희망과 성공과 좌절과 갈등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의 화해를 그대로 표현하면서, 마지막 그는 잊혀짐이 안타깝고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임웅균 교수 평양공연

테너 임웅균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전설(傳說, Legend)이다. 살아있는 전설(Living Legend)이다. 그는 정년을 맞았지만 그의 노래는 정년이 없다. 그의 열정도 쉽게 식지 않을 것이다.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대중클래식도 만개(滿開)할 것이다. 그의 인생 2모작을 향해 출발하는, 그래서 연주회를 ‘New Start Concert’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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