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과 러시아혁명 그리고 유토피아

1917년 러시아혁명의 불을 지핀 레닌


사유 私有 private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짐승 잡아먹고 열매 따먹고 살던 시절, 수렵채집 사회에선 먹을 것 따라 이동했다. 노마드(nomad)다. 내것 네것이 없이 소유개념조차 희박했다.

그 뒤 한곳 붙박이생활이 시작되며 농사지을 내 땅 늘려 나갔다. 키울 내 가축도 불려 나갔다. 재산축적이다. 소유가 권세를 가져왔다. 씨족장-부족장이 등장.

국가 되고 왕 나오고, 거기에 신앙-정신을 볼모로 횡포부리는 철학자-성직자 나왔다. 중세까지 읽고 쓰기-권력-재물 독점했다. 사유私有 제도화했다.

사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하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어 받았다. 영국의 토머스 홉스, 존 로크, 프랑스 장 자크 루소는 사유에 대한 옹호를 사유思惟했다.

현대 들어 피터 드러커가 총대 맸다. “소유는 권리다.” 노동자에 대한 기대는 그 정도면 됐다가 아니다. 최대한의 공헌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 잉여는 누구 소유가 되는가. 자본 가진 자가 가져간다.

공유 共有 common

북아메리카 북서부 밴쿠버 섬, 인디언 콰키우틀 족. 고기잡이로 사는 부족이다. 삶은 변변하다 생각하며 살았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Potlatch=나누어 주기가 기준이었다. 추장 직위는 후보들이 내 재산 얼마나 나누어 주느냐로 결정했다. 이긴다고 해서 형편 더 피지 않는다. 자리 차지하고 뇌물 챙기는 행태 없다. 여전히 배 타고 고기잡이하러 나간다.

결혼식 때도 많이 나눠야 존경받는다. 파산경쟁이다! 재산규모로 평가하는 지금과 정반대. 무소유無所有가 명예다.

흉년 들었을 때는 덜 타격 입은 부족이 더 많은 피해 난 부족에게 음식과 담요 줬었다 한다. 가진 자는 베풀고 못 가진 자는 이를 받았다. 굶주림과 추위 이겨내며 다른 기회를 모색할 수 있었다.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


혁명 革命 revolution

유토피아. 저 너머에 무엇이 있나. 그 탐구가 여행–>대항해로 이어졌다. 단연 뉴월드는 미국이었다. 지금도 몰려든다. 이름 하여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또 하나는 1917년 러시아혁명. 레닌은 서구의 사회주의를 회의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절로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보지 않았다. 그가 칭한 볼셰비키 속에는 ‘폭력에 의한 혁명’이 내재되어 있었다. 바로 공산당이다.

유토피아와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utopia-socialism-communism)의 목표는 같다. “더 나은 생활, 더 나은 사회다.”(the better life, the better society) 더불어 함께 잘 사는 사회다. 수단은 꿈, 비폭력, 폭력(dream-nonviolence-violence)으로 각기 다르다.

공산당=공산주의는 바로 여기서 세상 뒤집어 엎어버리자! 즉시 행한다고 했다. 러시아 공산당혁명이 좌절과 실패로 끝났다. 70년의 실험이었다. 지금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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