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후세인을 제거하라”···인류 역사상 최대 사기극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2001년 1월 조지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신보수주의자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부통령 체니, 국방장관 럼스펠드, 국방차관 월포위츠로 대표되는 이들 신보수주의 세력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제거해야 중동이 안정될 수 있다 믿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안전도 그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9.11 테러가 발생했다. 그들은 이번이 후세인을 제거할 절호의 찬스라는 것을 직감했고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스파이 세계에서는 미 국방성에서 이라크를 칠 구실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하세계의 협잡꾼과 사기꾼들이 정보 암거래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첩보세계에서 정보는 곧 돈과 곧바로 교환 가능한 가치인데다 확실한 매수자까지 나타났으니 이들이 가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세계 3위 우라늄 생산국인 니제르와 이라크 사이의 핵무기 제조용 우라늄 수출입 서류가 돌연 시장에 나타났다. 정보 거래에서는 서류 원본을 제공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부분을 검게 칠한 사본을 주고받는 것이 관행이다.
정보원 보호를 위해 어떻게 누구에게서 입수했는가도 묻지 않는다.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구조다. 더군다나 극비에 속하는 우라늄 수출입 서류라면 누구라도 그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서류를 미 국방성은 덥석 사들인다. 국무성에서는 이를 믿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얘기라 했다. CIA는 한물간 중고정보라 반박했다. 이라크 사람이 미국 망명 댓가로 내놓은 정보도 있었다. WMD, 그러니까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핵무기와 생물무기, 화학무기가 존재하는데 이는 지하 벙커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위장한 생물병기 연구, 제조 시설도 있다고 했다.
?국방성의 정책을 결정하는 브레인들은 후세인만 없으면 이스라엘과 중동에 평화가 온다고 주장해 왔는데 검증 불가능한 정보들을 짜깁기해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만들고는 슬그머니 언론에 흘렸다. 그런 다음 국방장관과 백악관 안보수석보좌관이 토크프로에 출연해 이를 사실인양 대담하고 토론했다.
국제여론은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가 찬조 출연해 주도했다. MI6에서는 여러 차례 이를 만류했고 미국은 할리우드 영화사처럼 전쟁에 필요한 시나리오를 제작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지만 블레어는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훗날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영국 군인의 가족에게서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 ‘전범’이라는 비난을 받는 봉변을 당하게 된다.
유엔이라는 구색을 갖추는 작업도 필요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국가보안국 NSA에 안보리 회원국의 동향을 알아내라 지시했다. 사실 UN에 대한 도청은 UN 창설 때 해온 첩보활동이라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유엔 창립 회의가 열렸다. 50개국이 넘는 국가가 참석해 전후 새 국제질서를 짜는 작업이었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북부지역에 임시 도청초소를 설치해 오가는 전신과 통화를 모두 가로챘다. 해독은 파견 나온 육군 암호부대 워싱턴 D.C.팀이 맡았다.
회의에서 미국의 최대 관심사항은 미국 영토 안에 UN본부를 유치하는 일이었다. 세계 각국의 대표단과 국제기관이 상주하게 될 UN을 자신의 울타리 안에 두고 마음껏 스파이 짓을 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소련도 같은 입장이었다.
외교관 한 명을 증원하기 위해서도 미 국무성과 힘겨운 협상을 해야 했는데 UN 상주직원은 얼마든지 임명할 수 있으니 미국에 스파이를 그만큼 많이 보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양국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결국 UN본부는 뉴욕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전임 사무총장인 부트로스 갈리가 차기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에게 했다는 얘기는 미국 정보기관의 유엔에 대한 도청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갈리는 도청을 일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사무실과 관사, 자동차에 대한 도청, 전화도청은 기본이며 자주 찾는 식당을 비롯해 즐겨 가는 곳 어디에서나 도청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런 실정이니 이라크와의 전쟁을 위해 안보리 결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도청과 스파이가 빠질 리 만무했다. 그들은 정탐한 내용을 토대로 회원국을 찬성과 반대, 유보로 분류하고 집요하게 공략했다. 반대하는 앙골라에는 수력발전소 건설자금을 원조하고 파키스탄에는 신형 전투기 구매를 지원했다. 멕시코에는 마약전쟁 자금을 추가로 보조해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공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 거짓 정보를 팔고 구매하고 이용해 이라크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자들은 본국 이라크에 돌아가 큰 자리를 차지했다. 허위제보를 산 미국인들 역시 아직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