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명시 ‘초혼’에 담긴 ‘러브 스토리’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초혼(招魂)은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것을 말한다. 가수 장윤정의 ‘초혼’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김소월의 시 ‘초혼’에 숨겨진 슬픈 사연을 알게 되었다.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은 평북 구성 출생으로 본명은 정식(廷湜)이다. 18세인 1920년 <창조>지에 ‘낭인의 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일본 유학 중 관동대지진으로 도쿄상과대학을 중단하였다. 고향에서 조부의 광산 경영을 도왔으나 망하고 동아일보 지국을 열었으나 당시 대중들의 무관심과 일제의 방해 등이 겹쳐 문을 닫고 말았다.
이후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며 술에 의지했고, 결국 1934년 12월 24일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유서나 유언은 없었다고 한다. 아내에게 죽기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라면서 우울해했다고 전해진다.
암울했던 일제 강압 통치시절, 32세의 짧은 생을 불꽃같이 살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한 위대한 시인이 그렇게 허망하게 갔다. 성장 과정에서 겪은 ‘한(恨)’을 여성적 감성으로 표현한 주옥같이 많은 서정시(抒情詩)를 남겼다.
작품으로는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개여울, 강촌, 왕십리, 산유화 등이 있다. 그 중 초혼(招魂)의 가사는 교과서에도 실렸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이 시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1904년 김소월이 세살 때 아버지 김성도가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후 광산을 운영하던 조부 집으로 이사하여 아픈 상처를 가진 채 성장했다.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로 진학했다.
오산학교 때 김소월은 3살 많은 ‘오순’을 알게 됐다. 둘은 서로 의지하고 상처를 보듬어주며 사랑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오산학교 재학 중인 1916년 14세 때,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과 강제로 혼인했다. 당시는 흔한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오순이 19살이 됐을 때, 그녀도 억지로 다른 사람과 혼인했다. 이후 둘의 연락은 끊겼지만 소월은 어려울 때 자신의 아픔을 보듬어주던 오순을 잊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3년 뒤 오순이 남편에게 맞아 사망했다. 남편이란 작자는 심한 의처증에 걸핏하면 폭력을 일삼았다. 소월은 가슴 아픈 마음을 안고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녀를 기리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편의 시를 바쳤다. 초혼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자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