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65] ‘뼈를 깎는’ 대학구조개혁 연착륙시키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대학구조개혁’, 대학 입장에서는 참 두려운 말이다. 대학구조개혁만큼 불편하고 부담되고 피하고 싶은 말이 또 있을까. 학령 인구의 급감과 대학입학 정원 간의 불균형이 빚어낸 시대의 촌극이자 비극이다. 많은 비용을 들여 기껏 만들어 놓은 대학을 일부러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 촌극이고, 대학구조개혁의 결말을 생각하면 비극이다.
정부에서 대학구조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구성한 조직이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이다. 대학구조개혁위원회는 대학구조개혁평가와 대학기본역량진단 등 대학의 구조개혁 관련 주요 정책을 심의·수행하는 자문기구이다. 2011년 7월에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나는 전문대교협 회장 자격으로 출범할 때부터 현재까지 참여하고 있는데, 9년 동안 쉬지 않고 위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위원회는 2014년 1월에 대학구조개혁 추진 계획을 수립하여 발표했다. 2015년 4월부터 8월까지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실시하여 재정 지원 가능 대학, 국가 장학금 Ⅰ유형 지원 가능 대학,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의 명단을 공개했다. 그리고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부터는 구조개혁이라는 명칭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그 명칭을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변경했다.
2017년 3월에 2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2017년 12월 기본 계획을 확정했다. 2018년 4월부터 8월까지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시행하여 일반재정지원사업과 연계했다. 즉 진단에 통과한 대학들은 대학혁신지원사업 Ⅰ유형인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했고, 통과하지 못한 대학들은 대학혁신지원사업 Ⅱ유형인 역량강화대학으로 재선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또 국가장학금 Ⅰ·Ⅱ 유형 지원 가능 대학과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의 명단을 최종 공개하기도 했다.
2019년 8월에는 2021년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기본 계획을 발표하여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특히 3주기에는 대학정원 조정과 연계하지 않도록 했다. 이는 평가와 연계한 인위적인 입학 정원 조정의 폭이 입학 자원 급감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와 대학기본역량진단 결과가 공개될 때마다 대학가에서는 큰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일반적으로 대대적인 인사 조치가 단행된다.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 정원을 감축해야 하고, 정부 재정 지원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한번 평가와 진단에서 밀려나면 대학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는다. 재정적인 위기 상황에도 직면하게 된다.
우리나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학들 중 등록금 수입과 정부 재정 지원에서 자유로운 대학은 거의 없다. 따라서 평가와 진단에 책임이 있는 총장들과 주요 보직자가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벌써 두 번째이다. 그러니 1주기든 2주기든 그 기본 방향과 함께 평가 지표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 대학 정원을 감축하고 또 재정 지원과는 어떻게 연동되는지에 목숨을 건다. 대부분 평가지표 항목과 산식에서는 너무나 날카로워진다. 나는 전문대학 대표이기도 하지만, 평가와 진단에 직접 참여하는 대학 총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고려한 것은 연착륙이었다. 사실 대학구조개혁과 기본역량진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너무나 하기 싫지만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이 달리 보이지 않는다. 적절한 지점에서 대학구조개혁과 대학 현장에 타협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교육부의 입장에 서보기도 했고, 현재는 대학 현장에 있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전문대학은 일반대학과는 또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 종전 대학 평가의 방향은 거의 일반대학 위주로 결정되었다. 전문대학은 그에 준해서 타율적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때문에 나는 전국 136개 전문대학을 위해서 구조개혁위원회에 참석할 때마다 전투하는 심정이 되었다. 대부분 일반대학에만 이해가 있는 다른 구조개혁위원들에게 전문대학의 교육 방향과 성과 평가의 방법을 일일이 설명하여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전문대학에 큰 부담을 주는 평가 항목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대폭 변경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 평가의 목적은 대학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발전과 경쟁력 강화라는 기본 원칙을 늘 상기시켰다.
한편으로는 대학구조개혁과 기본역량진단으로 대학들이 내몰리게 된 책임이 대학에만 있지 않다는 ‘정책의 역사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왜 오늘날 대학구조조정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등장했는가? 1996년에 시작된 ‘대학설립준칙주의’에 태생적인 원인이 있다. 그 당시 정부가 대학 설립 예고제를 도입하여 일정 요건만 갖추면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누구나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사립대가 1996년 109개에서 2013년 156개로 늘어났다. 2013년에 허가제로 바뀌기 전까지 우후죽순 격으로 대학이 늘어난 것이다.
대학설립준칙주의 이후 대학 난립은 지방대의 동반 몰락을 가져와 상대적으로 서울 시내 소재 대학들의 위상이 높아졌고, 대학이 많아지다 보니 대학의 서열화가 더 공고해지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대학구조개혁과 기본역량진단의 책임을 대학뿐만 아니라 정부도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대학이 뼈를 깎는 고통을 분담하며 상생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장의 경쟁 논리로만 접근하면 전문대학과 지방대학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 또 전제할 것은 전문대학이든 일반대학이든 고등직업교육의 주체로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고 나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까지 대학구조개혁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소위 부실 사학들에 대한 마땅한 퇴로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대학을 해산하려면 잔여 재산을 국고로 귀속시키게 되어 있는데, 잔여 재산 일부를 설립자에게 돌려주는 특례를 한시적으로 시행해 자발적 퇴출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대학구조개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최소화하고,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의 여파가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준비 체제를 갖추느라 대학들이 매우 분주해졌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민감한 사안이라 논의할 때마다 불에 덴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지만, 고통을 중화하기 위해 내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마음 깊숙이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