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66] 교육이 희망이다

“이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산업사회에서는 근로자를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구분했으나 4차 산업혁명시대엔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제는 ‘창의적 계층’과 ‘비창의적 계층’으로 구분하는 창의적 경제 시대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이기우 총장 <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발췌)  사진은 재능대 간호과 실습수업. 사진 인천재능대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국민들이 더 이상 교육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을 흔히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가장 변화가 극심한 부분이 바로 교육정책인 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을 전부 교육전문가로 만든 것은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우리의 책임이다. 교육에 대한 믿음의 부족, 신뢰의 상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이 꾸준히 유지되어야 체계적인 교육이 정립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일까.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 또한 교육이다. 나는 교육부에서 30여년, 인천재능대학교에서 14년 등 반세기 넘게 교육의 최일선에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해 왔다. 나름 교육에 대해서는 전문가적 식견을 지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도 ‘교육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늘 주저한다. 명쾌한 대답을 하기에는 교육 문제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한 가지 정리한 생각은 있다. 아니,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육 한길을 걸으면서 근육처럼 저절로 생겨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제시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이다. 실용 우선, 합리 지향, 실상 파악, 쓸모를 강조했던 실사구시야말로 교육의 요체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현재 우리 교육이 일정 부분 정체되고 또 갈팡질팡하고 있는 이유는 현실과의 간극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학벌 중심의 사회 구조와 같이 우리 교육이 사실을 추구하고 실용을 지향하는 힘이 너무 약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해결해 주는 넓은 의미에서의 실용성을 갖추어야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교육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동떨어져 독불장군처럼 고고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에서 추상성이 아니라 구체성으로 작동해야 한다. 한마디로 ‘써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쓸모 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다. 써먹을 수 없는 교육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 죽은 교육이다. 실사구시가 우리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교육이 희망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다시 희망의 범주에 포함시키려면 학벌중심사회라는 유령을 퇴치해야 한다. 학력이나 학벌이 만능의 열쇠처럼 작동하는 사회여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구조와 인식 체계에는 일반대학, 특히 수도권 4년제 대학 진학이 미래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진화된 외국처럼 직업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나아가 그렇게 공부한 학생이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즉 실력과 능력으로 평가받는 능력중심사회 구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실천이 더욱 확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은 “이 세상에는 성공적인 직업과 그렇지 못한 직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직업인과 그렇지 못한 직업인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직업의 가치가 아닌 일과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고, 그 가치에 맞게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사회이자 내일이 있는 사회이다.

능력중심사회를 여는 첫걸음은 고등교육 체계의 개혁이다.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의 위상과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에 대한 서열적 인식을 타파하여 각자의 전문 영역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학문과 연구 중심에 일반대학이 있다면, 전문대학 중심에는 평생직업교육이 있다.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은 전문 분야가 다르다. 이를 서열로 구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는 단순히 전문대학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보다 선진화되는 길을 가자는 의미이다. 따라서 일반대학 진학이 곧 성공이라는 잘못된 성취기준과 고등학교 진학 지도의 편향성도 개선되어야 한다.

이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산업 사회에서는 근로자를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구분했으나 이제는 ‘창의적 계층’과 ‘비창의적 계층’으로 구분하는 창의적 경제 시대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전문대학 안에서도 자신의 끼와 꿈에 맞는 직업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보다 확산될 필요가 있다. 일반대학도 마찬가지다. 간판을 따러 가는 교육이 아니라 자기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한다.

공자는 인재시교(因材施敎), 즉 사람의 소질과 성품을 고려하여 가르침이 달라야 한다는 맞춤형 교육을 강조한다. 성격이 소극적인 제자 염유에게는 “좋은 말을 들으면 곧바로 실천하라.”라고 재촉했지만, 의욕이 넘치는 자로에게는 “부모 형제와 상의해서 행동하라”고 신중론을 가르쳤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를 수 없다. 공자의 인재시교는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는 데 좋은 가르침이 된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도시공학과 버나드 아마데이 교수는 현재의 미국 공학 교육에 대하여 회의를 가진다고 밝혔다. 최고의 공학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는 미국의 명문대가 아니라 르완다의 키갈리 과학기술대학교(KIT)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유를 이렇게 소개한다. “모든 학생은 시골 마을에서 의무적으로 3개월을 지낸 후 학교로 돌아와 현장에서 경험한 문제의 해결 방안을 보고서로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은 2004년에 시작되었는데 4년 동안 매해 반복해야 졸업 자격이 주어지고, 학위를 받으려면 그 마을에서 자신이 어떠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나는 여기에 우리 교육의 내일을 여는 핵심적인 키워드가 담겨 있다고 본다. 바로 ‘일상의 문제 해결’이다. 한 마리의 물고기를 주는 교육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교육이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과 만나야 한다. 사실에 바탕을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실사구시의 태도와 실천을 겸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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