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61] 초고령·4차산업혁명 시대 걸맞은 직업교육진흥법 제정을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본의 아니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전문대교협) 회장을 8년 했다. 초유의 일이고, 최장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문대교협 회장을 지내면서 각 매체와 인터뷰를 참 많이 했다. 지금도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문대교협은 어떤 단체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전문대교협에서 하는 일을 소개해 달라는 취지의 물음이다. 이기우라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전문대교협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은 알겠는데 전문대교협은 그 하위 조직인가요?”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전국 136개 전문대학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협의체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문대교협에 대해 묻지 않는다. 교육 이슈가 발생하면 전문대교협을 통해 먼저 정보를 얻고자 한다.
지난 8년 동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나는 2010년 전문대교협 회장으로 합의 추대되었다. 선출직이었지만 나에 대한 기대감으로 힘을 실어 주기 위한 방편이었다. 전문대교협 입장에서는 그만큼 절박한 과제가 많았던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4년을 연임하면서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일단 전문대학의 자존심부터 세울 필요가 있었다. 일반대학의 하위 기관으로 인식되고 차별을 당연시했던 그 풍토를 걷어 내고 싶었다.
가장 시급한 것이 전문대학의 올바른 자리매김과 발전 방향 설정이었다. 그 당시에는 전문대학 총장을 학장으로 불렀다. 2∼3년제 학과 중심이므로 전문대학 총장은 학장이란다. 그리고 학교명을 ‘00대학’이라고 불렀다. ‘대학교’는 4년제 일반대학에만 붙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나 역시 ‘고졸 9급 신화’라는 명칭이 따라다니는 사람인데 평상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느냐, 혹은 얼마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느냐로 평가하지 대학으로 사람을 평가해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전문대가 가지고 있는 교육 내용 자체는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실용 위주로 되어 있어서 불필요한 거품이 빠져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거품 낀 것을 좋아하니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학장’에서 ‘총장’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학교명에 ‘교’ 자를 붙여 ‘대학교’란 교명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의 서열적 관계를 명칭부터 개선한 것이다. 전문대학 학생들에게 전문학사학위가 아닌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산업체 경력 없는’ 학사학위 전공심화 과정을 설치하여 다양하고 깊이 있게 학업을 이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간호학과에 4년제 수업 연한을 도입하여 전문대학에서 수업 연한 다양화가 필요한 학과들이 법적인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었다. 선진국처럼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의 벽이 사실상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아가 ‘고등직업교육평가인증원’, ‘고등직업교육연구소’를 설치하여 전문대학 교육의 질적 평가 수준과 중요 정책을 연구·개 발할 수 있는 기초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대학 엑스포(EXPO)를 개최하여 전문대학과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였다.
전문대교협 회장 임기는 2년이다. 연임을 하고 물러났었다. 3선 연임에 대한 권유를 물리치고 다른 분을 추천했다. 2년 후에 다시 “전문대학에 할 일이 많습니다. 위기의식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으니 다시 한번 전문대학을 위해 봉사해 주세요.” 하는 간청이 많았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회장에 뽑혀 8년간 최선을 다했다.
두 번째 연임을 하면서는 전문대학의 사회·교육적 역할과 위상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정부의 입학금 폐지에 따른 전문대학 지원 확대를 이끌어 냈다. 2022 대입제도 개선에서 전문대학과 직업교육을 위축시키는 불합리한 개선안을 합리적으로 수정했다.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인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전문대학의 특성을 반영한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와 연계하여 진행되는 대학혁신지원사업에서 평가를 없애고 사업비 지원 방식을 대학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지원금의 사용처에 대한 칸막이를 낮춰 대학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
또 강사법 도입 등 정부의 핵심 정책에 전문대학 현장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 외 지방자치단체의 전문대생 장학금 소외, 국가공무원 지역인재채용제 전문대 배제 등 전문대학에 대한 행정 및 재정적 차별 과제에 대하여 시정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문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와 고등직업교육의 국가적 책무성 강화 차원에서 직업교육진흥법을 마련하여 입법화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 전문대교협은 단순히 전문대학만 잘 살려고 활동하지 않는다. 직업교육의 발전은 온 국민에게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초고령 사회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평생직업교육 체제를 마련해 주는 국가적인 사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