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 라과디아 뉴욕시장과 추미애 법무장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뉴욕에 가면 우리나라 김포공항처럼 ‘라과디아(Laguardia) 공항’이 있다.
아름다운 허드슨강을 끼고 앉은 뉴욕의 ‘라과디아공항’의 주차장에는 가장 좋은 위치에 법관만의 주차장이 따로 있다. 아무리 법관이 존경받는다는 사법국가 미국이라지만, 어째서 장애인이나 상원의원보다 법관의 주차위치가 더 좋은 곳으로 지정되었을까?
대공황으로 미국인들이 춥고 어두운 나날을 보내던 1930년대 어느 겨울이었다. 뉴욕 빈민가에 위치한 즉결법정에서 야간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재판순서에 따라 남루한 옷차림을 한 할머니 한 분이 법대(法臺) 앞으로 불려 나왔다.
할머니는 실직한 사위가 가출해 버린 뒤 병들어 누운 딸을 대신해서 어린 손녀들을 홀로 키워오다가, 어느 날 마침내 음식과 돈이 모두 떨어져 손녀들에게 아무 것도 먹일 수가 없게 되었다. 종일 굶은 채 무작정 길을 걷던 할머니는 제과점 간판이 눈에 띄자 마치 자석에 끌리듯 안으로 들어가 빵 한 덩어리를 몰래 가지고 나오다가 주인에게 들켰다.
경찰에 넘겨진 할머니는 절도죄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즉결재판에 회부되었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담당판사는 피해자인 빵가게 주인에게 할머니를 용서해줄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빵가게 주인은 할머니가 불쌍하기는 하지만 자기 제과점에서 하루도 빵을 도둑맞지 않는 날이 없다면서 절도범을 엄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방청하던 사람들은 냉정하기 짝이 없는 빵가게 주인을 마음속으로 비난하면서 그래도 판사는 불쌍한 할머니에게 관용을 베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판사는 할머니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이었다. 손녀들에게 먹일 빵 한 조각조차 마련할 돈이 없는 할머니에게 벌금 10달러가 있을 턱이 없었다.
실망한 방청인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판사를 흘기듯 쳐다보고 있을 때, 판사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말이 튀어나왔다. “법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죄를 지었으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할머니가 굶주리는 손녀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훔쳐야 하는 이 비정(非情)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동안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온 저 자신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저의 벌금으로 할머니의 벌금을 대신 내겠습니다. 그리고 이 법정에 있는 뉴욕시민 여러분에게도 각기 50센트씩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모자에 넣은 다음, 그 모자를 방청석으로 돌렸다. 법정에 앉았다가 난데없이 억울한(?)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방청인들은 항의는커녕 웃음 가득한 얼굴로 ‘죄 없이 받은 처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말이 벌금이지 사실은 할머니를 위해 따뜻한 기부금을 내달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방청인들이 다투듯 돈을 꺼내 모자에 넣었고, 얼마인지는 모르나 아마 빵가게 주인도 돈을 넣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인 돈이 자그마치 57달러 50센트였다. 대공황의 불황 속에서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판사는 그중에서 벌금 10달러를 뺀 47달러 50센트를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었다. 감격에 북받친 할머니는 판사와 방청인들을 향해 연신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눈물 글썽해진 얼굴로, 그러나 환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할머니의 병든 딸과 어린 손녀들은 적어도 몇 주 동안은 굶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의 후손으로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뉴욕시장을 세 차례나 지낸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라는 법조인이 뉴욕시의 임시 치안판사(magistrate)를 맡았던 때의 일화다. 키 155cm의 단구(短軀)인 라과디아는 판사로서도 특이했지만 뉴욕시장을 지낼 때도 예사로운 행정가가 아니었다.
대공황 시절에 연거푸 세 번 뉴욕시장으로 선출된 그는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뉴욕시민들에게 장밋빛 공약이나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대신에 ‘인내(Patience)와 불굴(Fortitude)’이라는 두 가지 덕목을 요구했다.
그 라과디아 시장과 함께 뉴욕시민들은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해냈다.
그것만이 아니다. 라과디아 시장이 사망한 후 뉴욕시민들은 새로 지은 공항의 이름을 ‘라과디아공항’이라고 지었다. 공항 안에 그의 동상도 세웠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로 미증유의 국난을 겪고 있다. 우리도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이 국난을 돌파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