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박사 ‘나 떠나는 날엔’과 나의 ‘유언’

이시형 박사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1934년생으로 올해 87살을 맞은 정신의학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평소에 이 세상을 어떻게 떠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나 떠나는 날엔’이라는 글이 공감되는 바가 있어 소개한다.

『어떻게 떠나야 할까를 혼자서 가끔 생각하게 된다. 내 결론은 크게 흔들림이 없다. 바라기로는 먼저 어느 낯선 곳에 강연을 간다. 언제나 그러하듯 영혼을 토해내 강의한다. 끝나고 나면 숨을 크게 못 쉴 때도 있고 갈비뼈가 아파 만질 수도 없다. 그럴 땐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고 싶지 않다. 그럴 힘도 기력도 물론 남아있지 않다.

돌아오는 길엔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러 들기도 한다. 마지막 날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느 낯선 곳에 강연을 마치고 터덜터덜 숙소로 가는 길에서 그만 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렇게 될 것 같다. 그게 가장 나다운 최후일 듯싶다.

장례식은 없다. 바쁜 사람 불러 모아 귀찮게 할 생각 없다. 가장 가까운 의대에 모든 걸 기증했으니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된다. 몸을 너무 오래 써서 닳아버린 게 많아 나누어 줄 게 있을지 걱정이다. 그리고 몸은 학생 해부실습용으로 간다. 해부가 끝나면 한데 모아 해부제(解剖祭)를 지낸다.

유골 한 줌 얻어 와 고향 마을 선산 그리고 내 혼을 피워낸 선마을과 세로토닌문화원 한쪽에 뿌려졌으면 영광이겠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내 마지막 장을 써놓고 나니 우리 아이들이 그러면 너무 서운해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면 작은 목관에 내 이름을 써서 선산 내 자리에 꽂아라. 짐승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작은 걸로 해라. 그리고 너희가 세상을 뜰 즈음에 비목(碑木)도 썩어 흙으로 돌아가게 해라.

이만큼 살아온 것만으로 고맙다. 살아온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베푼 은혜가 나를 살려왔다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내 나이 팔십이 넘어 나에게 누군가 인생훈을 물었을 때 난 서슴없이 사은(四恩, 天地‧父母‧同胞‧法律恩)이라고 대답했다. 이제 남은 세월 그간 입은 은혜에 감사하며 살겠다.

빚을 진만큼 갚고 가야 할 텐데 아무래도 다 갚고 떠날 것 같지 않다. 입은 은혜가 너무 커서… 길에서 팍 쓰러진 사람이 무슨 말이 있겠나. 하지만 난 떠날 날이 가까이 오면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외치겠다. 잘 들리진 않겠지만 그리고 마지막 날엔 ‘나그네 설움’을 부르리라. 그럴 힘이 남아 있다. 시끄러운 놈이 이제 떠나니 세상이 한결 조용해지길 기원하면서…』

필자 역시 오래전 자식들에게 유언을 해두었다. 요즘 건강이 신통치 않다. 그래서 나라에 건강 요양보호사를 신청했더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애등급이 나와 매일 같이 간호를 받고 있다. 이제는 떠날 때가 가까워 왔다는 신호가 아닐까? 따라서 언제 가도 좋을 정도로 착심이 들지 않도록 유언의 대강을 다음과 같이 밝혀둔다.

첫째, 재산. 재산이라야 얼마 되지 않아 뭐 별로 남겨둔 것이 없어 그냥 말로 어떻게 하라고 자식들에게 얘기해 두었다.

둘째, 장례. 오래 전 원불교 은혜심기본부에 시신기증을 신청해 두었다. 그런데 요즘은 시신 기증하는 사람이 많아 그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파주 월롱역 부근에 문중 선산이 꽤 아름답다. 그래서 화장을 해 그냥 선산에 뿌리라고 유언을 해두었다.

셋째, 연명치료 거부. 우리 부부는 몇 년 전에 연명치료거부의향서를 일산병원에 신청해 두었다. 혹 중병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가더라도 연명치료는 거부한다.

넷째, 천도재. ‘일원대도’(一圓大道) 귀의 후, 근 40년 일심으로 수행의 길을 달려왔다. 나름대로 생사문제를 해결했다고는 하나 알게 모르게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혹 청정일념(淸淨一念)을 챙기지 못했다면 내생에라도 천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 여의도교당에서 49재를 지내면 마음 편히 떠날 것 같다.

다섯째, 부조금. 나의 부모 열반 때와 마찬가지로 혹 내 장례식에 부조금이 들어온 것이 있다면 모두 원불교에 기증해 나의 명복(冥福)을 빌어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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