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44] 인천재능대 호텔외식조리과 ‘탄생 비화’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2008년 재능대학 안에 신설 학과로 호텔외식조리과를 만들었다. 사실 이 학과를 만들게 된 것은 교육부 시절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조리과학고)와 맺은 인연 때문이었다.
이 고등학교를 만든 사람은 서울시립대 교수였던 진태홍 교장 선생님이다. 조리과학고는 시흥의 폐교된 학교에서 시작했다. 오직 ‘조리’만을 가지고 시작한 고등학교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조리과학고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거 좋은 일이다. 생각이 참 좋다.’ 하는 우호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는 고등학교가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육부 지방교육행정국장 시절에 학교 담장을 없애는 일을 주도적으로 실행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남 제안이었다. 담장을 없애면 학교가 지역사회 속에 살아 숨 쉴 수 있게 되고, 지역과 더불어 공존·공생할 수 있는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로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는 조리과학고라는 아이디어가 고교 교육을 다양화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얼마 후, 정부 지원 10억원 예산이 필요하다는 조리과학고의 요청이 있었다. 서류를 올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밑에서는 이게 안 되는 걸로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직원들을 불러서 내 견해를 밝혔다. “다시 한번 검토해 보세요. 우리 교육부에서 학교를 지어 시작하려면 150억원은 넣어야 돼요. 10억 원 주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걸 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게 어디 가나요. 시설 짓고 하는 건데 그거를 인색하게 하면 되겠습니까?”
내 생각은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예전부터의 지론이었다. 내 생각은 분명했다. 교육부가 주도적으로 하지 못하는 일이라도 우리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들면 적극 지원하는 것이 교육부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그 전에도 전남 광주 쪽에 대안고등학교 설립에 관한 문제가 있었던 적이 있다. 정규 고등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탈락한 학생들을 교육시켜 보자는 취지의 대안고등학교였다.
그런데 막상 개교하려니 전남교육청에서 인가를 안 해 주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 문제가 나에게까지 왔다. 왜 안 되는지 점검해 보니 원인은 전남교육청 중등국장 때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고등학교는 교육과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완벽하지 않고, 그래서 인가가 불가하다는 논리였다. 나는 중등국장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그거 해 주세요.” 대뜸 그 말부터 꺼냈다. 중등국장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생각해 둔 말을 바로 이어 나갔다. “국장님, 이거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교육과정이 세팅이 안 돼서 그렇다고요? 그러면 국장님, 미쳤다고 실험적인 대안학교를 만듭니까, 정규 학교를 만들어야지. 여기는 정규 교육에서 탈락된 아이들 받아 주는 학교 아닙니까. 그러면 시간을 좀 주세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돈 한 푼 안 주고, 민간인들이 모여서 부적응 학생 키우려고 실험적인 학교를 만드는데 우리가 훼방하면 안 되잖습니까?”
나는 예전 민족사관고등학교 이야기도 꺼냈다. “민사고 아시죠? 민사고도 민사고라는 이름 때문에 2년째 인가 안 되는 걸 제가 장관님을 설득했습니다. ‘400억원이나 투자해서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키우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하지 못할망정 그 좋은 시설을 해 놓고도 이름 하나로 2년이나 붙들어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설명하고 민사고도 제가 통과시켰습니다. 이 대안학교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꼭 같은 길만 가야 된다고, 이 길만 길인 줄 알고 있는데 가다 보면 어디 그렇습니까? 길이 아닌 길이라도 새 길을 내려고 그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가려고 할 때 ‘그 길 가지 마라.’ 이렇게 막는 게 잘하는 겁니까? 우리가 정규 교육과정에서 탈락한 학생들까지 다 보살펴 줄 수 있습니까? 못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우리가 못 하는 걸 이 사람들이 해 준다는 게 진짜 다행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대안고등학교 인가는 통과되었다. 조리과학고 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직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 다시 한번 검토를 거친 후 조리과학고에 대한 지원이 결정되었다. 바로 그 조리과학고가 몇 년 뒤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사이에 학교 내신 1등급 학생들만 올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재능대학에 취임했다니까 자기들의 졸업 전시회를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하게 되었는데 꼭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동안의 발전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관심을 가지고 행사에 참석해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요리 솜씨의 훌륭함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놀랐다. 대견하고 멋져 보였다. 그런데 안타까웠던 것은 이 학생들이 졸업 후 갈 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곧바로 재능대학에 조리 관련 학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조리과학고를 방문하여 학교를 찬찬히 둘러보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재능대학에 이 뛰어난 학생들을 데려와야겠다고 말이다.
조리과학고 등 우수한 조리 시설을 갖춘 고등학교에서 조리 교육을 받던 학생들이 실망하지 않고 꿈을 향해 실력을 마음껏 갈고닦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과감히 투자했다. 40여억원을 들여 국내외 유명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독일·이태리산 조리 도구를 완비하고 학과를 개설했다.
한식의 세계화를 선도할 최고의 국제 경쟁력을 갖춘 창의적인 전문 조리인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호텔외식조리과를 신설한 것이다. 모집 정원 160명, 40명씩 네 반을 만들었으며, 이 중에 한국조리과학고, 인천생활과학고, 해양과학고 등 전국 40여 개의 조리 관련 고교의 졸업생들을 특별전형으로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한식요리경연대회에서 우리 학교 1학년 학생들이 대상을 받았다. 이것은 준비된 성공이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