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48] 중앙아시아에 재능대 꽃 피다

인천재능대는 2016년 10월부터 12월까지 한국에 들어와 직업연수를 받은 고려인 직업연수생을 대상으로 제1회 독립운동가 최재형 독후감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12월 23일 인천재능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금상 김안나 학생이 채양묵 위원장(왼쪽)과 박춘봉 공동대표(가운데)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중앙아시아에는 지구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고원인 티베트고원과 파미르고원, 남쪽으로는 히말라야산맥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의 성과 이름을 가진 한민족 동포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제 시대 강압 통치를 피하여 많은 우리 동포가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의 영토였던 연해주로 이주했다.

하얼빈 의거의 안중근 의사,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 장군,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 고려인들의 대부 최재형 등이 바로 그들이다. 고려인들은 제정 러시아의 붕괴와 볼셰비키 혁명 등 역사의 격랑 속에 휘말렸다. 결국 소수 민족 탄압 정책을 펼친 스탈린에 의해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까지, 17만 5천여 명이 강제 이주를 당했다.

고려인들은 그동안 일군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짐짝처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에 차례로 버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포들은 다시 억척스럽게 중앙아시아의 메마른 황무지를 개척하여 구소련 내 소수 민족 중에서도 가장 잘사는 민족이 되어 주류 사회로 진출했다. 하지만 1991년 구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 차례로 연방을 떠나 독립하며,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워 고려인들을 다시 핍박하기 시작했다. 현재 약 55만 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어렵게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2015년 당시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려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하여 카자흐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 청년 10명을 교육해 줄 수 있으신가요?”

평소 고려인들의 어려움을 듣고 있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 이들은 뷰티와 미용 연수를 받았다. 1기 수료생들이 고국에 돌아가 우리 대학에서 배운 기술로 재취업과 창업에 성공했다. 교육 효과에 힘입어 연수 사업은 확대되었다. 벌써 5년 연속으로 총 8개 국가(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벨라루스)에서 175명의 고려인 동포 연수생들이 우리 대학에서 연수를 마쳤다.

2019년 9월에는 8개 국가 12개 공관에서 뽑힌 40여 명의 연수생들이 한식 조리, 제과 제빵,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호텔 식음료 서비스 교육을 수료했다. 재외동포재단 관계자는 “인천재능대학교에서 공부한 연수생들이 학업에 대한 호응도가 높고 만족도 역시 높다. 실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고 있어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나아가 우리 대학의 교육 사업을 모델로 직업교육 사업을 타 지역 재외동포로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수료생들이 본인의 형제, 자매, 친한 지인에게 교육의 우수함을 알리고 추천하여 프로그램에 지원한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는 독립운동가의 3세 후손이 방문하여 연수를 받았다. 그 교육을 바탕으로 올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여 한국에 영구 귀국하기도 했다.

나는 고려인들에게 단순히 직업교육만 시킬 것이 아니라, 고려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한국어와 역사 교육’을 병행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말이 서툴고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말도 늘고, 모국의 문화를 느끼고 배우고 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안중근 의사의 후원자)을 기리는 ‘최재형기념고려인지원사업회’의 후원을 받아 고려인의 역사 교육과 독후감 대회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90일간의 교육을 받고 나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우리말로 느리지만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보면 ‘피는 속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좋은 교육, 좋은 친구들, 함께했던 시간을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제대로 뷰티 헤어 과정을 배워 본 적이 없어요.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요. 고려인들은 모국을 TV 속에서만 보았는데 한국에서의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학교에서 배운 걸 통해 고향에 돌아가 꿈을 꼭 이루겠어요. 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이 카자흐스탄 알마티 소재 사립 경영비지니스전문대를 방문해 디자인과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을 둘러본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이런 인연 덕분에 2018년 카자흐스탄 전문대학협의회에서 나를 초청해서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방문하게 되었다. 알마티에 있는 김종일 한국교육원 원장으로부터 ‘이기우 총장이 온다’는 소식을 접한 수료생들이 나를 만나러 알마티로 달려왔다. 이들이 달려온 거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최소 1,000km에서 최대 2,500km 떨어진 곳에서 10여 명의 수료생들이 기차를 타고 찾아온 것이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들은 인천재능대학교에서 연수받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인천재능대 동문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이들이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연수생들과 식사를 하며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 경비로 가져온 지갑 안의 모든 사비를 털어 연수생들에게 차비로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자신과 선배들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2017년에 수료한 3기 뷰티 미용 연수생은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의 현직 미용사로 돌아가 유명 헤어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어요.” “같은 기수의 우크라이나 출신 연수생들은 고향 마을에 한식당을 공동으로 열었습니다.” “인천재능대에서 갈고닦은 한국어를 활용하여 현지에 진출한 한국 회사에 취업한 연수생도 있어요.”

척박한 중앙아시아에 재능의 꽃봉오리가 피는 것을 확인하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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