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유전자 지도] 김빛내리 교수 “바이러스 이기려면 아킬레스건 공격 방법 찾아야”

왼쪽부터 장혜식 연구위원, 김빛내리 연구단장, 김동완 연구원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유전자(RNA·리보핵산)의 숨겨진 비밀을 풀 수 있는 ‘유전자 지도’를 국내 연구진이 완성했다. 이에 코로나19의 진단 기술 개선과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정보를 담당하는 핵산이 RNA로 이뤄진 RNA 바이러스의 가장 큰 특징은 체내에 침투한 뒤 바이러스를 늘리기 위해 유전정보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잘 일어난다는 점이다. DNA 바이러스에 비해 RNA 바이러스는 유전정보를 한번 복제할 때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

코로나바이러스는 RNA 형태 유전자 약 3만개로 이뤄진 게놈(genome, 유전체)을 갖고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인 인체세포에 침투해 유전 정보가 담긴 RNA를 복제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하위 RNA를 생산한다. 이 하위 RNA는 바이러스 입자 구조를 구성하는 여러 단백질(스파이크 단백질, 외피外皮 등)을 만든다. 복제된 RNA와 단백질은 인체 세포 안에서 완성체를 이루며 이후 세포를 탈출해 새로운 세포를 감염시킨다.

서울대 김빛내리 생명과학부 교수는 ‘코로나19 과학 리포트’에서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적의 특성을 파악하고 아킬레스건을 공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기술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RNA연구단 김빛내리 단장팀은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과 공동으로 코로나19 RNA 전사체(轉寫體, Transcriptome) 분석 연구를 실시했다. 유전체 분석 및 헬스 케어 전문기업인 (주)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도 연구에 참여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국내 유일 기초과학 연구 전담기관으로, 세계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창조적 지식 확보와 우수 연구인력 양성에 기여하기 위해 2011년 설립되었다. 네이처 출판그룹(NPG)이 최근 4년간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한 100개 대학·연구기관을 ‘네이처 인덱스 라이징 스타’(Nature Index 2016 Rising Star)로 선정했는데, 기초과학연구원이 11위에 올랐다.

전사체는 전사(轉寫)를 의미하는 ‘transcription’과 전체를 의미하는 접미어 ‘-ome’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다. 전사체란 전사 산물 전체를 포괄하거나 특정 발생 단계 또는 생리적 환경에서의 세포 내 전사 산물의 총합을 의미한다. 보통은 모든 RNA들의 합을 의미하지만, 실험에 따라서 messenger RNA(mRNA)만의 총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사체학(Transcriptomics)은 전사체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다. 전사체를 이해하는 것은 유전체의 기능적 요소를 해석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며, 세포들과 조직들의 분자적 구성성분 규명, 발생 과정과 질병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기여를 한다. 정해진 세포주(cell line) 내에서 어느 정도 고정된 유전체(genome)와는 다르게, 전사체는 외부 환경상태에 따라 변하기 쉽다.

김빛내리 박사 연구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게놈)와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감염된 뒤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중간 과정으로 생산하는 전사체 전체를 해독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셀>(Cell) 4월 9일자에 발표했다. 기존 연구는 코로나바이러스 RNA만 해독한 반면,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가 인체 내 숙주세포에 들어가 증식하면서 복사한 RNA와 하위 유전체 RNA 등을 모두 해독한 것이 특징이다. 즉 게놈은 일종의 ‘바이러스 종합 설계도’라면, 전사체 지도는 불필요한 부분을 뺀 ‘핵심 설계도’에 해당한다.

전사체 분석은 미생물에서 동물, 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생물체를 대상으로 유전자의 발현 조절 분석에 활용된다. 예를 들면, 줄기세포와 암세포의 전사체 연구는 세포 내 분화 또는 암 발생 과정에 대한 이해에 기여하고 있으며, 난자(卵子)의 근원이 되는 난모세포(卵母細胞, oocyte)들과 배아들에 대한 전사체 분석은 조기 배아 발생과정을 조절하는 분자 메커니즘과 신호전달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된다. 또한 약물의 안정성을 판단하거나 화학적 위험 평가에 사용될 바이오마커(biomarker) 발견 등에도 사용될 수 있다.

‘유전체 지도’를 자동차 설계도에 비유하면, 설계도에는 자동차가 어떤 모양이고 어떤 부품을 썼는지는 나타나지만 어떻게 움직일지는 추측만 할 수 있다. 이에 실제로 차가 어떻게 달릴지는 차를 움직여 보면서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야만 한다. ‘유전체 지도’는 바이러스를 정지화면으로 보는 것이라면, ‘전사체 지도’는 바이러스가 숙주(사람)에 들어와서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혼자서 대사를 하지 못하고 숙주(宿主)가 되는 다른 세포에 기생해야만 살 수 있다. 이에 바이러스는 숙주에 침투해 다양한 전사체를 만든다. 연구팀의 장혜식 연구위원(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이 전사체의 구성과 변형을 찾아냈으며, 이 변형 부위를 연구하면 바이러스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프로그래머인 장혜식 교수는 계산생물학자이다.

RNA와 DNA는 컴퓨터가 이해하기 쉬운 디지털 정보에 가깝다. RNA는 염기(鹽基) 4개(A, C, G, U)가 구슬을 꿰듯 이어지는데, 염기가 조합된 서열이 유전정보가 된다. 그 정보를 컴퓨터 파일로 옮겨 패턴을 분석한다. 수백만 개에서 수억 개까지 분석하려면 프로그래밍으로 자동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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