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은 물론 베트남·중국도 하는 원격의료 언제까지 미룰 참인가?

국내 원격진료가 어렵자, 병원들이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사진은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이 2019년 8월 2일 베트남 호치민 원격거점센터(해외거점센터 4호점) 개소를 위해 부산시, 부산경제진흥원 관계자와 베트남 호치민시를 방문할 당시. <사진 고신대복음병원 제공>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의료’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 정부는 인구 고령화, 의료 격차, 코로나 팬데믹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원격의료를 해법으로 삼고 있다. 미국은 원격의료에 대한 규제가 없지만 2013년을 전후해서 각 주(州)별로 관련 법령을 마련하여 속도를 내고 있다. 2014년의 경우 전체 진료의 17%가 원격진료였다.

유럽연합(EU)은 2004년 회원국에 원격진료 확대를 위한 로드맵 작성을 권고했다. 프랑스는 2019년부터 원격의료를 본격화하여 노인복지시설과 의사가 부족한 지역을 대상으로 원격진료 시설과 장비를 설치하고 있으며, 진료 비용도 100% 보험처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남미의 칠레는 지역별 의료 격차가 극심해 원격의료 확대에 적극적이며, 에이즈와 암 환자도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

중국은 의료인 부족, 도시와 낙후 지역 간 극심한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원격의료 도입에 나섰다. 일본은 2015년부터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했다. 이어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되자 올해 4월부터는 초진 환자도 원격진료를 할 수 있게 했으며, 범위도 만성질환, 알레르기, 폐렴 등으로 확대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원격의료시장은 올해 355억달러(약 4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5년 181억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14.4% 성장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전문가들은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 성장세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은 1997년부터 원격의료에 메디케어(Medicare, 공공의료보험)에서 보험을 적용해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낮춰주기 시작했다. 이후 웨어러블(wearable) 모니터링 등 각종 원격의료 기기들이 개발되면서 2019년 시장 규모가 24억달러(2조9천억원)까지 성장했다. 특히 2014년부터 5년간 연평균 34.7%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은 2014년부터 원격진료를 전면 하용하고 전략적으로 육성한 결과 시장규모가 약 39억달러로 미국을 넘어섰다. 중국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원격진료는 물론 고령층이 모바일 앱으로 간호사를 집으로 불러 간단한 치료를 받는 서비스도 활성화했다. 코로나19 사태로 11개로 늘어난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 중 가장 사용자가 많은 ‘핑안굿닥터’는 회원 수가 10배 가까이 늘어 총 11억1천만명이 이용했다.

일본의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19년 현재 2억달러 정도이지만, 2018년부터 원격진료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으며 코로나19의 팬데믹을 계기로 원격진료 시장이 앞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규제에 발이 묶여 시장 규모를 추정하지 못할 정도로 초라하다. 이에 세계 최고 기술력도 국내에선 무용지물이므로 원격의료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들은 대부분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사업을 펴고 있다.

미국 보훈처는 우리나라 인성정보주식회사 제품을 2017년부터 퇴역 군인 8000명에게 제공하는 재택(在宅) 원격진료 서비스 ‘홈 텔레헬스’에 시용되고 있다. (주)인성정보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호주 등 총 16개국, 19개 파트너사에 원격의료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 해 최대 5000개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원격진료 시범사업에 80대를 판매한 것이 전부다.

가슴에 삽입하는 전기장치인 인공심장박동기와 제세동기(除細動器)에는 실시간으로 환자 맥박 등 심장 상태를 감지해 원격으로 전송하는 기능이 갖춰져 있으며, 부정맥(不整脈)을 미리 감지해 원격으로 조정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원격진료가 의료법으로 금지된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진들이 이런 기능은 끄고 환자에게 박동기와 제세동기를 삽입한다.

선진국에선 원격전송 기능을 30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보다 의료 기술이 낮은 베트남 등에서도 이미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심장박동기 삽입 시술 건수는 2018년 4457건, 제세동기는 1366건에 달하며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심장 질환은 큰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이를 예측할 수 있는 ‘이상 신호’들이 있으므로 원격진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자에게 이상이 생기면 원격으로 기기를 작동시키는 등 의사의 판단이 개입하는 ‘원격 모니터링’도 금지되어 있다. 이에 박동기나 제세동기를 삽입한 심장병 환자들은 특별한 이상이 없어도 6개월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와야 하므로 특히 고령 환자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다. 이에 원격의료 대상을 ‘고위험 환자’로 한정하는 등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면 의료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원격의료는 상급 병원과 1-2차 의료기관이 진료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상급 병원이 원격의료를 위한 플랫폼(platform)을 만들어 전국 의료기관이 함께 사용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며, 효율적인 의료 자원 배분은 결국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세계 원격의료(telemedicine) 시장이 내년이면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IT강국 인프라를 기반으로 ‘K-방역’과 함께 시너지를 낸다면 새로운 미래 먹거리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진료와 관련하여 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서 비대면 진료체계 구축이 시급하므로 국민(소비자)은 찬성하고 의료계는 반대하는 원격의료를 21대 국회에서 접점을 찾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