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sia, 내가 바로 아시아 최고의 맛”
4년 전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스로스(28)씨. 지금의 남편과 중매로 결혼해 한국에 왔다는 그는 일곱 남매 중 다섯 째 딸이다.
그의 부모님은 캄보디아에 있지만 남동생은 일자리를 찾아 인천에 있고 언니 중 한 명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결혼식은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각각 한번씩 했어요. 4살짜리 아들이 한 명 있어요.”
그는 결혼 후 한국생활에서 힘든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처음엔 “별로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그러면서도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없으니까???”라고 수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외로움이 비쳤다.
“일하고 싶어요”???결혼이주여성 경제자립 의지 강렬
“처음에는 남편이 일하는 것을 반대했어요. 한국어 공부를 더해서 공무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는 캄보디아에서도 일을 해 본적이 없어요. 제가 돈을 벌어서 시어머니 선물도 사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애기한테 더 좋은 장난감 사주고 더 좋은 옷 입혀주고 싶어요.”
그는 미용사 자격증도 땄다고 했다. “미용실 같은 곳에 취직해서 일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혼 전부터 그에게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던 남편은 그가 일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일을 안 하면 몸은 편하겠지만, 마음이 안 편해요. (일을) 하고 싶은데 못하게 하니까???”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고 보탬이 되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결국 남편을 설득시켰고, 19일 개업한 다문화 음식점 <I’m Asia>에서 홀서빙 인력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개업 첫 주는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그 다음 주부터는 오전과 오후로 나눠 교대 근무를 한다고 한다. 그는 공부를 계속하면 좋겠다는 남편의 바람대로 “7월에는 한국어능력시험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녀가 일을 간절히 원했던 이유는 또 있었다.
“교사였던 남편이 지금은 일반 회사에 다닌다. 어릴 때부터 다리가 아팠던 남편이 수술을 하게 됐다. 고혈압도 있다. 많이 힘들어하는 게 안쓰러워 내가 도와 줄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남편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다.”
그의 남편은 교수가 되고 싶어했다고 했다. “스로스에게 힘든 일을 안 시키겠다”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직접 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꿈도 이야기 했다. “2층 집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처음 3년은 시부모님과 함께 1층에서, 지금은 위층에 살아요”
그는 “한국과 캄보디아 문화에 차이가 많다”며 그 중에서도 ‘시집 눈치 보는 문화’를 꼽았다.
“캄보디아에선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굉장히 잘 해주는데 한국 문화는 조금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시어머니가 아기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시기 때문이란 것을 알지만 아기 옷 입히는 것이나 먹이는 것 등 잔소리를 조금 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도 성격상 화를 내거나 말대꾸를 해본 적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캄보디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캄보디아에선 아직 여자가 대학이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게 흔치 않다”고 했다. 그의 부모님 역시 그가 대학교에 들어갔으면 했지만 형편상 여의치 않았고 결혼 후 한국에 들어와 생활하게 됐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불만스럽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부모님은 7남매 뒷바라지를 했다. 은혜를 꼭 갚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 “친정 엄마가 곁에 없다면 낳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기를 낳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친정 엄마 얘기가 자연스럽게 아버지 이야기로 넘어가자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며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캄보디아에 계신 아버지는 석달 전부터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했다.
스로스의 아버지를 병원에 데려다 주던 그의 이모. 그에게는 스로스의 아이와 동갑내기인 4살 난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한달 전 병원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이모의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에게도 도움을 드리고 싶고, 이모님에게도 너무 죄송하다. 꼭 도움이 되고 싶다”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외국으로 ‘팔려 온 것’ 아냐, 양질의 일자리?필요
6살?아이를 둔 주부 김태란씨는 중국 하얼빈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지 5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또 힘든 것이 있었냐고 묻자 그는 “많았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네 할머니들이 나에게 중국에서 학교는 다녀봤냐고 물었다. 남자한테 (물건처럼) 얼마에 팔려 왔냐는 식의 말을 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면 거짓말 한다고 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그에게 면전에서 그런 말을 쏟아놓는 한국 사람들이 큰 상처가 됐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못 살아서 한국으로 시집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 번은 버스에서 중국에서 온 친구 3명과 이야기 하고 있는데 한국인이 그의 일행에게 대놓고 욕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 중에 중국에 직접 가보지도 않고, 중국인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점에서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어느 가게에 물건을 사러 들어갔는대 텔레비전을 보던 가게 주인이?’중국산 배추’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 ‘중국인들 ‘X새끼!’라며 심하게 욕했다. 내가 중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한 얘기는 아니지만 심하게 (모욕감이) 느껴졌다”며 “한국 사람들이 알고도 (싼 것만) 들여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 중 일부가 중국에 대한 혐오가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 사람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다”며 “특히 대전이주외국인복지관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 주셨다. 한국어와 컴퓨터, 요리도 배웠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날 <I’m Asia> 주방 일을 돕기 위해 온 그는 “얼마 전 3개월 동안 파스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못하고 나오게 됐다. (중국에서) 대학 졸업했고, 마케팅을 전공했다. 한국에 와서 일자리 구할 때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창업 통해 이주여성 일자리 창출 “I’m Asia”
대전외국인복지관 김봉구 관장은 “대전에만도 이주여성이 2000명이 넘는다. 이들의 취업이 어려워 결국 창업으로 일자리 창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대전외국인복지관은 결혼이주여성들의 경제적 자립과 일자리 창출을 돕기 위해 1년이 넘는 준비과정을 거쳐 19일 아시아 요리?다문화 카페인 <I’m Asia>의 문을 열게 됐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의 음식을 한국인 입맛에 맞춰 개발해 시식회와 품평회를 거쳤다.
대전외국인복지관 조진희 실장은 “I’m Asia 운영과 함께 케이터링 홍보팀이 각종 행사와 대회에 참가해 아시아 요리를 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5월 대전에서 열리는 세계조리사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대전 중구 대흥동 우리들공원 주차장 출구 맞은편에 위치한 <I’m Asia>. 월남쌈을 제외한 식사류는 6000~8500원 사이에서 맛볼 수 있다. 연유를 넣어 마시는 베트남 커피, 인도네시아 커피, 그리고 가볍게 식사와 곁들일 수 있는 맥주도 준비돼 있다. 꽃망울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 봄날 주말 오후, <아 이맛이야!>에서 다양한 아시아 음식을 먹으며?다문화를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중국에서 학교는 다녀봤냐? 남자한테 (물건처럼) 얼마에 팔려 왔냐?”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됐는데 다짜고짜 막말을 쏟아놓는 한국 사람들 때문에 중국인 여성이 큰 상처를 받았군요. 중국에서 못 살아서 한국으로 시집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가봐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다수의 한국인들, 살기 팍팍해도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으로 버티는 것 같아요. 하긴 착각이 낫죠. 비관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보다는…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앞뒷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