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벼’ 이성부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벼가 익어가는 모습은 아이의 자라나는 것과 똑 닮았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