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장마당에서’ 이상국 “막걸리 사발에 가슴을 데우거나”
우리나라 나이 잡수신 길들은
아직 장마당에서 만난다
장작을 여내 고무신을 바꾸고
소를 내다 팔아 며느리를 보던 사람들
난전 차일 아래 약장수가 놀고
장돌뱅이들 이악스럽게 설쳐대도
농사꾼들은 해마다 낫과 쇠스랑을 벼리고
감자꽃 같은 아낙들 무릎마중을 하고
산 너머 집난이 소식 끝에 치마폭에 코를 풀던 곳
때로는 사는 게 팍팍하여
참나무 같은 어깨를 부딪치며
막걸리 사발에 가슴을 데우거나
우전머리에서 송아지 엉덩판 후려치며
공연히 음성 높이던 사람들 다 어디 가고
우리나라 울툴불퉁한 길들만
장마당에서 겨우 만나고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