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친화 사회’와 이순재·정영숙 주연의 로맨스영화 ‘로망’

영화 <로망> 한 장면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이순재와 정영숙 등이 주연한 로맨스영화 <로망>이 있다. 이창근 감독의 이 영화는 결혼 45년차인 75세 조남봉(이순재 분)과 71세 이매자(정영숙 분)는 동반 치매(癡呆)에 걸린 노부부의 애환이 스며있다. 고령화 치매사회를 담담히 직시하는 작품이다.

남봉은 매일 라디오를 듣는 택시 운전기사이며, 매자는 가정주부로서 여느 부부와 같이 평범하다. 백수이자 박사 출신인 아들, 학원강사로 일하는 며느리, 그리고 손녀와 한 집에서 살아간다. 어느 날 매자에게 갑자기 치매가 찾아 온 뒤, 설상가상으로 남봉에게도 치매가 온다. 두 사람은 현재 기억은 잊혀가고 과거의 기억이 선명해진다. 영화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부부의 사랑을 일깨워주며 노년 부부의 아릿한 로맨스로 감동을 전해 준다.

로망(프랑스어 roman, 영어 romance)은 중세 유럽에서 문학의 한 종류로 좁은 의미로는 중세기사의 모험과 사랑을 담은 이야기,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특징을 아우른 전기적(傳奇的)·모험적·공상적인 통속소설을 이른다. 한편으로 ‘로망’이란 단어는 이상과 욕망을 녹여낸다는 특징에서 따와서 낭만(浪漫)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노망(老妄)은 늙어서 망령되게 행동하는 것으로 치매(癡呆, Dementia)의 속된 말이다. 우리나라도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모든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겁내는 것이 치매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수는 70만5473명으로 전년도 66만1707명보다 4만명 넘게 늘었다. 치매 유병률(有病率)도 2017년 10%로 나타나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중앙치매센터는 치매환자가 2024년 100만명, 2039년 200만명, 2050년에는 300만명이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치매는 한번 걸리면 오래가는 질병이기에 유병률이 쉽게 떨어지지 않으며,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치매환자 숫자가 계속 누적해 올라가고 있다.

치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 비용은 2074만원이며,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14조6000억원이다.

통계청의 ‘2017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치매에 의한 사망자는 총 9291명(남성 2699명, 여성 6592명)으로 나타났다. 치매 사망률은 여성 10만명당 25.7명, 남성은 10.6명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2.4배 높았다.

여성의 치매 사망률이 크게 높은 이유는 여성의 평균수명이 더 길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보다 치매 진행 속도가 빠른데, 진행 속도가 빠를수록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학력은 치매의 보호인자로 작용하는데, 과거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해 치매와 치매로 인한 사망위험이 여성이 더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공식문서에서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인 치매라는 병명 대신 인지증(認知症)이라는 객관적인 용어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이제는 일반인도 ‘인지증’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치매’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경우는 적다. 일본 정부가 추산하는 치매환자는 약 600만명이며 2025년에는 7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은 이런 치매환자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치매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5년부터 전 부처가 ‘신오렌지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치매 환자와의 공존 정책’을 합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즉 치매환자가 걱정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치매 친화 지역’을 만드는 정책이다.

일본 NHK 방송이 2017년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틀간 ‘특별식당’을 열었다. ‘치매환자에게 관용을 베풀며 함께 살자’는 행사가 폭발적인 관심을 얻은 후 각종 기관과 회사에서 치매환자들이 종업원으로 나오는 행사를 열고 있다. 치매환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거나 혜택을 주는 ‘치매 카페’도 전국에 약 5천여개 있다. 치매환자를 도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이 전국에 ‘치매 스포터(spotter)’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간단체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Restaurant of Mistaken Orders)’는 ‘치매환자도 보통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부정기적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일본 도쿄 도심 후생노동성 식당에서 65-91세의 치매 환자 7명이 지난 3월 4일부터 이틀간 손님을 안내하고, 음식을 주문받아 전달했다. 행사 취지에 공감한 손님들은 주문한 것과 다른 음식이 나와도 다들 불평 없이 웃으며 식사했다고 한다. 식당 특별종업원(치매환자)들이 잘못 알아들은 비율은 37%를 차지했으나, 손님들 99%가 ‘괜찮다’과 응답했다. 또한 손님 중 95%가 “치매 환자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KBS-1TV ‘주문을 잊은 음식점’ 2부작이 8월 9일과 16일에 방송되었다. ‘치매’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내용은 이연복 총괄셰프와 개그우먼 송은이가 매니저가 되어 경증치매 어르신 5명과 이틀간 음식점을 운영하는 스토리로 구성되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치매 어르신들의 구구절절한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는 모습을 발랄하게 보여주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치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를 갖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치매환자들과 쌓았던 벽을 허물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매니저로 모든 것을 총괄한 송은이는 “살면서 체득해오신 게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제가 섣불렀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건망증(健忘症), 경도인지장애(輕度認知障碍), 치매(癡呆)의 차이점은 예를 들어 식당에서 식사 후에 식당 주인이 ‘손님, 계산 안 하셨어요’라고 말했을 때 “깜박했네”하면 건망증, “내가 계산을 안 했나?”하면 경도인지장애, “내가 왜 계산을 해야 해?”하면 치매인 경우다. 경도인지장애란 인지기능과 기억력은 떨어졌지만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능력은 보존된 상태를 말하며, 3분의 1 정도는 나중에 치매로 진행된다. 학습이나 운동 등 인지기능 개선요법으로 기억장애를 현저히 줄이고, 치매 발현 시기를 늦출 수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에서 권장하는 ‘치매예방수칙 3.3.3’은 다음과 같다. 3권(勸, 즐길 것)은 운동(일주일에 3번 이상 걷기), 식사(생선과 채소를 골고루 챙겨 먹기), 독서(부지런히 읽고 쓰기)이며, 3금(禁, 참을 것)은 절주(술은 한 번에 3잔보다 적게 마신다), 금연(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뇌손상 예방(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한다)이며, 3행(行, 챙길 것)은 건강검진(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3가지를 정기적으로 체크한다), 소통(가족과 친구를 자주 연락하고 만난다), 치매조기발견(매년 보건소에서 치매조기검진를 받는다) 등이다.

세대별 ‘치매 예방 액션플랜’은 청년기(靑年期)에는 하루 세 끼를 꼭 챙겨먹으며,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로 운동을 하며,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장년기(壯年期)에는 생활습관에서 오는 질병은 꾸준히 치료하며, 우울증은 적극 치료한다. 노년기(老年期)에는 매일매일 뇌신경을 자극하는 치매예방운동을 하며, 여러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매년 보건소에서 치매조기검진을 받는다.

한국치매협회는 ‘치매는 예방가능한 질병입니다’를 일반인에게 알리고 있다. 우리가 치매환자에게 “당신은 우리 사회에 계속 존재하고 있고, 당신은 언제나 얼마든지 작은일이던 더한 큰일이던 해 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씩 늘어난다면 ‘치매 친화 사회(Demenia Friendly Society)’를 조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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