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싯다르타’①] “진리는 가르칠 수 없다. 지식을 통해 인간은 변화될 수 없다”

헤르만 헤세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 몸과 마음의 처절한 고행을 세파 속에서 겪어야 비로소 배움이라 할 것이다.

들어가는 말

“진리는 가르칠 수 없다.” 그리고 “공부나 지식을 통해 인간은 변화될 수 없다.” 이 깨달음을 헤르만 헤세는 일생에 꼭 한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다. 몸과 마음의 처절한 고행을 세파 속에서 몸소 겪는 실제 체험만이 자신을 바꾼다.

헨리 밀러는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노자의 <도덕경> 이후 내게 <싯다르타>보다 더 중요한 책은 없었다. 헤세는 동서양의 정신적 유산을 시적으로 승화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붓다를 넘어서 또 하나의 붓다를 창조하였다. 문학의 종교적·철학적 지평을 넓혀 준 헤세의 <싯다르타>는 정신적으로 <신약성서>와 더불어 큰 치유력을 가진 작품이다.”

그의 ‘삶의 단계’란 시를 한번 음미해보자.

‘삶의 단계’

한번 핀 꽃은 시들고
젊음도 늙음을 피할 수 없듯
모든 지혜도 그리고 모든 미덕도
한 철은 꽃피지만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

우리의 마음도 언제나 생이 외치는 소리에
선뜻 이별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눈물 따윈 흘리지 말고 씩씩하게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한다.

모든 시작에 마법같은 것이 깃들여 있어
우릴 감싸주고 우리가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즐겁게 이곳에서 저곳을 활보하고
어느 장소에도 고향처럼 매달려서는 안 된다.
세계정신은 우릴 붙잡거나 죄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릴 한 단계씩 올려주고 넓혀준다.

우리가 인생을 한곳에 묶어두고 거기에
친숙해지는 순간 무력감이 우릴 덮쳐 온다.

언제나 떠나고 방랑할 자세가 된 사람만이
습관이라는 마비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의 순간마저도
우리에게 새로운 젊은 공간을 보내리라
우릴 향한 생의 부름은 결코 그침이 없으리라.
그렇다면 마음아, 이별을 하고 건강하게 살자.

헤르만 헤세의 생애 

헤르만 헤세(1877~1962) 독일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며 규율이 유난히 엄격한 수도원 기숙사 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아가 강했다. 헤세는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도망친다. <수레바퀴 밑에서>를 쓴 후에 자살을 기도하고 전학과 자퇴를 한 후에 시계부품 공장 수습공을 거쳐 서점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쓴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이 릴케의 인정을 받는다. 결혼 후에 여행도 자주 다녔으며 특히 33살 때 부모님이 선교활동을 하였던 인도로 가서 새로운 문화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싯다르타>를 쓴 후에 스위스로 이주하여 <데미안> <황야의 이리>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을 썼다. 우울증과 신경쇠약 치료를 위해 그림 그리기와 정원 가꾸기를 평생 즐겼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평생 구도자의 삶을 살았으며 작품마다에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배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헤세의 가장 주요한 관심사는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과 바른 인성을 찾기 위하여 기존 양식의 문명을 벗어나 참된 인간됨을 다루는데 있다. 자기 정체성과 인식을 호소하고 동양의 신비주의에 심취하고 깊이 찬양하였다. 그는 서구권은 물론 동양의 젊은이들의 영원한 우상이 되었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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