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첫 발간 100주년③] ‘다음 100년’ 헤르만 헤세 같은 작가 또 나올까?

헤르만 헤세. 그는 성장통을 겪는 청춘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명이다.

PC 작업 중에 두번이나 바아러스로 애를 먹었는데 현재도 불안하여 좀 미완의 원고를 보내니 양해하고 정독하여 교정바랍니다. 이런 사정으로 큰 제목이나 중간 제목을 기사화할 수 있게 못 적었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책이지만 워낙 제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열성 팬이라 힘드는 가운데 신명나게 정리해 봤습니다. 내용이 시사할 점은 많지만 워낙 방대한 헤세의 글이라 미진한 점 양해하여 바쁘더라도 세밀히 교정바랍니다. 특히 독자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자극적인 중간 중간 제목을 넣어 독자들에게 구미가 당기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사진은 PC 문제로 카카오로 보내겠습니다. 거듭 미안합니다. 박상설 드림.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힌 외국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데미안>이 가장 앞쪽에 놓일 것이다. 중장년층에서는 특히 압도적으로 이 책이 꼽힌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데미안>이 올해 출간 100년을 맞는다. <아시아엔>은 이에 맞춰 박상설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께 데미안 독후감을 부탁했다. 올해 91세인 박 전문기자는 한쪽 시력을 어려서 잃은데 이어 3~4년전부터 나머지 한쪽 눈도 거의 실명단계에 놓여 어렵사리 이틀에 걸쳐 독후감을 완성해 보내왔다. 박 전문기자의 독후감을 세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 만일 데미안 책을 읽으며 이해가 안 된다거나 어렵다면 그 이유는 지금 독자의 삶이 자신과 너무 멀어진 채 이미 외부에만 익숙해져 버렸다는 뜻이 아닐까? 진정한 데미안의 삶을 찾아야 한다. 사실은 필자도 처음에는 난해하고 남의 이야기만 같았다. 책을 밀어둔 채 내버려 두었더니 정신적 압박에 못 이겨 틈나는 대로 외부세계를 무시하고 필자 자신의 문제로만 꾸준히 읽어나갔다.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깊게 잠들어있던 잠재의식이 나를 끌고 다니는 주인이 되었다. 비로소 바로 내가 자신의 주체적 주인으로 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남 따라 남의 삶을 산 것이다. 사변적 겉치레의 삶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든 일을 해치우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데미안은 아이 같지 않고 어른스럽고 성숙한 분위기와 행동들이 돋보인다. 그것은 싱클레어나 데미안처럼 치밀하게 인생에 대한 사색과 고민을 집중적으로 하는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우정은 상당히 정신적이다. 그들은 자주 만나지도 않고 만나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다. 또 주로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둘의 관계는 동등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 멘토 나 랍비가 필요한 까닭이다.

데미안의 존재는 是非的이며 탐구적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봤을 때 데미안이란 인물을 실존하는 하나의 인물로 보는 것은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미래상이다. 결국은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동일인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데미안이 제시해주는 카인의 문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얘기 등은 싱클레어가 성장해 가면서 스스로에게 묻는 물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의 사랑도 싱클레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이다. 육체적인 관계를 잠시 희망하지만 그것보다는 더 영속적인 정신적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싱클레어가 바라는 사랑이다. 즉 헤세가 바라는 사랑의 표상이다.

이 책은 사춘기 시절 필독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인생의 고뇌를 경험하고 상처도 받고 때론 상처를 주며 자라는 청소년기는 찬란하기만 하다. 이러한 성장의 길을 보여주기에 이 소설을 때론 성장소설이라고도 한다.

사람은 악마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에 반대되는 악마적 요소를 지닌 ‘아프락사스’란 것에 사람들은 집착하고 매력을 느끼는 것을 보면 그렇다.

왜 헤세는 현실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냐는 것이다. 사색은 꼭 고민으로만 귀결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삶에 대한 경외와 행복으로 끝날 수는 없는 것일까? 분명 일반사람들도 ‘허무하다’는 등 ‘일장춘몽’이라는 등의 말은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근원은 의식하지 않는다. 미래로의 발전이나 변화는 정치제도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자연의 순리나 개연성의 역사 흐름 역시 훌륭한 혁명적 공력의 결과다. 나중에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떤 기분으로 책을 덮을까 많이 궁금해진다.

헤르만 헤세의 인문학적 시사점

헤세에 대한 대표적인 전기 중의 하나는 1927년 위고 발(Hugo Ball)이 쓴 갓이다. 위고 발은 헤세를 “찬란한 낭만주의 대열의 마지막 기사”라고 표현했다. 헤세는 또 끝없이 낭만을 추구한 작가로 기억할 만하다.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청춘을 그리워했으며 이성을 향한 동경이나 호기심은 그 시절의 감미로운 심리묘사들로 잘 드러난다.

헤세의 작품이 갖는 자전적 경향은 그의 생애 마지막 18년 동안에 나온 산문들에서 숨김없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헤세 작품에서는 작중 인물로 본인이나 자기 인생에서 인상 깊게 경험한 인물들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헤세 글에서는 인간의 냄새가 난다. 원초적 인간본능이라 할 수 있는 청춘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을 향한 동경, 자유를 꿈꾸는 인간적 해방의 가치가 녹아있다. 현대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는 이유다.

필자가 가을 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겨있다.<사진=박상설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현대문명이 자연과 유리되면서 대중은 외톨이로 전락했다. 인간소외는 증가했고 우울증은 깊어지고 있다. 섬세한 심리 소유자로서 일찍이 젊은 시절부터 정신병적 고통을 경험한 그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시, 음악, 그림 등을 통해 자연과 사회와 융합하는 삶의 길을 모색해왔다. 이러한 그의 경험과 심리과정은 정신적 외로움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데미안은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 길이 무엇인가 묻고 있다.

헤르만 헤세 대문호 약력

1877년 독일 남부 칼브에서 선교사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자 수도원 학교에서 도망쳐 나온 뒤 시계공장과 서점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한다. 15세 때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낸다. 20대 초부터 작품활동을 시작,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한다. <데미안>은 1919년 42세 때 발표했다. 앞서 그는 33세 때 인도여행을 감행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기행>을 쓴다.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하여 1914년 1차세계대전을 맞는다. 군 입대를 자원하나 부적격 판정을 받고 독일 포로구호지구에서 일하며 전쟁포로들과 억류자를 위한 잡지를 발행한다. 이후 정치적 논문, 경고문, 호소문 등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글을 발표하는 한편 이상사회의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소재의 동화도 집필했다. 계속해서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동방순례> <유리알 유희> 등 전 세계 독자를 매료시킨 작품을 잇따라 발표한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뇌출혈로 영면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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