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100주년] 평론가 전찬일의 ‘기획의 변’…”2019년 왜 헤르만 헤세인가?”

지금 왜 우리는 데미안을 다시 생각해야 할까? 이 글은 해답을 어느 정도 주고 있다.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2019 데미안 프로젝트’ 추진위원회 대표위원] 당시의 적잖은 청소년들이 그랬듯 내가 헤르만 헤세와 처음 조우한 때는 1975년 중학교 2년 적이었다. 유난히 독서삼매경에 빠져 지냈던 그해, <수레바퀴 아래서>를 필두로 <황야의 이리>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순으로 내리읽었다. 그러다 <유리알 유희> 앞에서 멈춰 섰다. 그 멈춤과 더불어 짧았던 내 ‘헤세앓이’도 잦아들었다. 1946년 헤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는 그 핵심 텍스트는 열다섯 소년에게는 너무도 거대했고 심원했다. 그 당시 몇 차례 도전했다 몇 쪽 못 넘기고 덮곤 했던, 아직도 읽지 않은 쇠렌 키르케고의 <죽음에 이르는 병>처럼.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지난 44년을 헤세와 ‘함께’ 살아왔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다. 이 고백의 계기는 2018년 8월 경향신문에 소개했던 ‘내 인생의 책’ 원고다. 총 5권 중 그 첫번째 책으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제시한 바 “그 매혹은 여전히 압도적이며, 더 깊어졌고 넓어진 게” 아닌가. “그 내외적 성격은 말할 것 없고 삶과 죽음을 향한 태도 등에서 더 이상 대조적일 수 없을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통해 인간 일반의 양면적 존재성을 탐구한” 문제적 걸작 장편소설. 그 원고를 기점으로 잠복해 있던 헤세앓이가 다시금 나를 휘감았다. 디테일에서야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겠으나 몇 해 전부터 거창하게 ‘글로컬 컬처 플래너 & 커넥터’를 표방해온 나의 삶은 결국 ‘나르치스를 머금은 골드문트’이자 ‘골드문트적 지향을 지닌 나르치스’로 요약될 법했다.

그뿐만 아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 <황야의 이리>의 하리 할러, <데미안>의 에밀 싱클레어, 나아가 <싯다르타>의 싯다르타에 내 정체성은 물론 내 평생의 가치·욕망 등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고 한들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였다. <데미안> 출간 100주년이 특별한 함의를 띠고 내게 다가서고, 내친 김에 ‘2019 <데미안> 프로젝트’를 전격 기획·추진하기로 어느 모로는 무모하기 짝이 없을 결단을 내린 까닭은.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으며, 학부 및 대학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등도 이번 기획에 작용했을 터. 더욱이 그 헤세 원고를 읽은 지인들의 반응도 내 주목을 끌었다. 헤세를 향한 다양한 관심들을 적극 표명하는 게 아닌가. 헤세앓이는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 불현듯 헤세 문학이 내게 안겨준 추억·인상·영향 등을 가능한 많은 분야의 분들과 공유해 단행본을 내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그래 거칠게 ‘헤세와 나’를 주제로, 헤세를 ‘모티브’ 삼아 필자들 나름의 ‘자아탐구’ ‘평화’ ‘배려’ ‘상호존중’ ‘새로운 세상’ 등에 대한 단상을 원고지 15매 전후 분량으로 자유롭게 써 보내달라는 요청을 200명 족히 넘는 분들에게 보냈다. 그중 70명 가까이 응했고, 그중 시인 강은교 선생부터 한국케냐협회 허필수 회장에 이르기까지 최종 58분이 옥고를 보내줬다. 감사하게도 목표치 50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였다. 그중 두 분의 옥고는 헌시(박노해)와 헌사(김주연)로 배치했다.

단행본 출간을 포함한 ‘2019 <데미안> 프로젝트’는 그저 <데미안> 발간 100주년을 기념하려는 기획이 아니다. 헤세를 찬미·숭배하려는 기획은 더더욱 아니다. 이 기획은 막연하게나마 내 미래를 설계했던 중학교 시절 이래 줄곧 추구해온 ‘공적 대의’와 8년간 몸담아왔던 부산국제영화제를 2016년 12월 떠난 후 60을 바라보는 프리랜서로서 내가 살아가고 싶고 살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려는 ‘사적 비전’이 결합된 결정적 기획이다.

<데미안>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계기로 작금의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기여하고픈 바람에서, 구체적으로는 덜 물질 중심적이고, 인간 존중·새로운 세상 등으로 나아가는 가치 지향적인 문화·사회를 향한 내 나름의 간절한 바람에서, 그 바람을 단지 나만의 바람으로만 그치지 않고 가능한 많은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말만이 아닌 구체적 실천으로 옮기고 싶다는 소망에서 전격 추진하게 된 대기획이랄까.

전 세계 인구 74억명에게 동일한, 평범한 사실일 수 있으나 그 사실을 특별한 역사로 승화시켜 우리네 삶에,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말할 것 없고 성인들의 삶에도 어떤 선한 기여·영향을 안겨주고 싶다는 희망의 기획! 또한 반전·평화주의자로서 평화와 화합, 욕망과 금욕, 자아탐구, 혼돈과 질서,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선과 악 등 양극의 해법을 한평생 고민한 세계적 대문호 헤세와 60명에 달하는 국내 각계 인사들의 지혜·철학을 공유함으로써 공존과 상생의 새로운 가치·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작지만 소중한 시도다.

그렇다면 세계 역사의 수많은 문학가들 중 왜 하필 헤세일까? 동의 여부를 떠나 우선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다룬, 특히 사회라는 체제가 개인을 억압한 우리 상황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준 작가”(이하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박홍규, 2017)로서 헤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 문학가 중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거의 유일하게 청소년 시절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제의적 작가로 수용돼 와서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저항했고, 양심과 책임으로’ ‘고통당하고 억압당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자신의 생애에서나 작품에서 언제나 추구했던’ 사회적·반자본주의적·아나키스트적 작가. 우리네 기성세대에게 헤세는 그런 작가였다. 그동안 이 나라에서는 적잖이 오독돼오긴 했어도···.

헤세의 전작全作 중에서도 <데미안>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세계 문학사의 변곡점적 성장소설이자 시대소설! 그 점은 국내 한 일간지의 독자 투표 결과(조선일보, <데미안>은 왜 압도적 1위가 됐나, 2017. 8. 11)로도 드러난 바 있다. <데미안>이 이제 막 18세에 접어들며 성인이 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1위로 뽑힌 것이다. 그뿐 아니다. 바야흐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BTS(방탄소년단)가 2016년 두 번째 앨범 『Wings』의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데미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BTS에 ‘문학돌’이라는 영예(?)가 따라다니는 이유 중 하나다.

내가 40여년을 헤세와 더불어 살아오며 그에게 남다른 주목과 존경을 바쳐온 또 다른 까닭은 그가 개별 인간의 자아 성찰·탐구는 물론 인간 일반의 근원적 존재성을 탐색한 문화예술가-인간이어서다. 그 어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80대 중반 저 세상 사람이 될 때까지 평생을 노마드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말이다. 내가 아는 한 분야를 불문하고 그런 길을 헤세처럼 초지일관 걷다 저 세상으로 떠난 이는 없다. 헤세야말로 작금의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히 소환·요청돼야 할 존재라고 여기는 것은 그래서다.

박홍규는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맺음말’ 맨 마지막 단락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독일이나 한국이나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을 회복해야 할 때다. 헤세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반항하라고 헤세는 말한다. 안이하고 달콤한 힐링의 속삭임에 굴복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반항하라. 반항하기에 인간이다”라고. 이 인용에서 정신은 가치로, 반항은 저항으로 바뀌어도 무방하다.

또 민음사 간 <싯다르타>의 번역자 박병덕은 다음과 같은 평가로 작품 소개를 매듭짓는다. “끊임없이 시대의 병과 위기를 고발하면서 ‘내면으로의 길’을 통한 자아 해방과 새로운 생활 감정을 추구하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고 고뇌하는 지식인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온 헤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신적 스승’의 한 사람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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