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책 산책] 마르틴 부버 ‘인간의 길’ 그리고 혁명의 길

[아시아엔=임소희 나눔문화 이사장] 고난 앞에서 절망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고, 믿음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도록 손을 내밀어 주고, 다시 힘껏 날아오를 재생의 날개가 되어 주는 것. 좋은 영화일 수도, 음악일 수도, 책일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다. 내 인생의 고전, 인간의 존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마르틴 부버의 <인간의 길>이 그 중 하나다.

작지만 큰 울림의 책, 인간의 길

손바닥만큼 작은 60쪽의 얇은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울림은 6만쪽의 책보다 크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나눔문화 ‘연구원 정진’에서 처음 읽은 이 책은 나를 지진처럼 뒤흔들었다. ‘인간 본연의 소명은 무엇인가?’ 실존적 물음을 던진 책이었다. 그후에도 곁에 두고 힘들 때마다 펼쳐보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성찰을 주었다.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는 책과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큼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한해를 돌아보며 침묵 중에 만나면 좋을 책, <인간의 길>로 걸어가 보자.

저항하는 현인, 마르틴 부버의 생애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마르틴 부버의 사상과 생애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마르틴 부버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종교사상가 중 한명이며 랍비(유대교 사제)이자 사회주의자다. 1878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나치와 맞섰고,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맑스주의를 넘어서고자 했으며, 미국과소련의 냉전체제와 핵무기에 맞서 저항했다. 이스라엘의건국을 꿈꾸었으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로운 공존과 ‘키부츠’(노동을 토대로 하는 공동체) 운동을 추구해 권력자들에게 끊임없는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그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며 “현존하는 보기 드문 현인”이라 불렀다. 명저 <나와 너>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마르틴 부버는 ‘가파른 시대의 산등성이’ 에 서서 더 깊고 높은 길, 참다운 삶과 인간의 길을 걸어간 철학자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을까

마르틴 부버는 인간된 길의 시작을 ‘마음 살핌’이라 한다. 하느님이 아담에게 던진 질문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느냐는 간수장의 질문에, 무고하게 감옥에 갇힌 랍비는 “네게 주어진 몇해 몇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있느냐?”고 묻는다. 심장에 박히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간수장은 랍비의 이야기를 듣고 과거생활을 자책할 따름이었는데, 이는 제대로 된 마음 살핌이 아니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자기실존을 온갖 은신처로 꾸민 요지경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마르틴 부버는 은신처에서 나와 “저는 숨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이것이 인간된 길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자학과 실망의 나락으로 끌고 들어가는 ‘부질없는 마음 살핌’에서 ‘결정적 마음 살핌’으로 거듭나고자할 때, 비로소 인간의 길은 시작된다.

어떤 일을 하든 온몸으로, 통째로 하라

일을 망쳐 꾸지람을 듣는 제자의 사연을 빗대어, 마르틴 부버는 ‘쪽마음’이 아닌 ‘통째의 마음’을 강조한다. 흩어진마음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 일하라는 것이다. 여러 갈래로 복잡한 마음을 가지면 행동도 그리 나오고,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번잡함을 벗고 하나의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가히 신의 경지가 아닌가? 그러나 마르틴 부버는 사람은 누구나 영혼 깊은 곳에 신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 여러 힘과 요소를 하나로 묶어 조화롭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자기 마음을 믿을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하였는데, 처음엔 나도 그리 믿었다. 헌데 아직도 갈 길이 먼듯하여 ‘이러려고 이 책을 이토록 읽었나?’ 잠시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은신처로 도망가는 꼴이라고 하니, 일단 그 마음부터 멈추기로 하였다.

인간의 가장 높은 존엄의 실현은 ‘혁명’

그렇다면 마르틴 부버가 말하는 인간 본연의 소명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세상과 자아를 긍정하며 둘 모두를 변혁하는 것’이다. 본래 세상과 자아는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이다. 그런데 인간 각자가 지닌 거룩한 정열을 세상으로 돌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차지하도록 두면 ‘악’으로변질된다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악몽같은 현실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러나 또한 우리는 악의 세력이 만들어 낸 어둠을 밝은 빛으로 비추어 가는 혁명을 해나가고 있다. 인간으로서 가장 높은 존엄의 실현은 ‘혁명의 길’이며 우리는 그 ‘인간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1924년, 41세의 마르틴 부버는 이렇게 말했다. “가르침이나 길은 그저 깊이 연구하기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이제는가르침은 배우라고 있고, 길은 가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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