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21세기형 인재 87] ‘고백’은 리더의 주요 덕목, 오해와 갈등 불식시켜
[아시아엔=김희봉 교육공학박사, 현대자동차 인재개발원] “누나, 난 누나가 좋아. 말하게 해 줘.”
“뻔뻔한 줄 아는데 이제 안 되겠다. 양심, 죄책감 다 모르겠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한다는 거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극중 연인에게 했던 사랑 고백이다. 고백은 자신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하는 것으로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에 따라 스스로 해야 의미가 있다.
드라마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이런 고백이 쉽지만은 않다. 상당 시간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물론, 용기를 내야만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고백이 다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고백하는 내용은 비단 사랑뿐만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삶 속에서 지은 죄를 <고백록>이라는 작품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
당시의 사회상이나 그의 지위 등을 가늠해보면 한 눈에 보기에도 그의 고백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한편 사람들은 사랑이나 종교적인 고백(confession) 외에도 자신이 알고 있거나 밝혀낸 학문적 진리나 진실 등을 많은 사람 앞에 나서서 말하기도 했다. 주로 전문직(profession), 전문가(professional), 교수(professor) 등 특정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고백한 것이다.
천동설 중심 사회에서 지동설을 제시했던 코페르니쿠스와 그에 대한 지지를 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떠올려보면 된다.
이렇게 살펴보면 고백이란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있거나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고백은 주로 기존의 사회적 통념 혹은 질서에 반하거나 자신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말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백은 더 많은 상황과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까지도 고백의 범주 내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고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인식과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인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거나 실수한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고백하기가 어렵다. 또한 용기는 두려움이 없어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을 알고 있는 상태를 극복한 가운데 나오는 것이기에 어떤 내용이 되었든지 간에 고백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자기인식과 용기를 ‘리더’의 특성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렇게 보면 리더는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리더는 무엇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할까? 먼저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션, 비전, 가치 등 신념체계에 대해 고백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자신의 과오나 부족함에 대한 고백 역시 빠질 수 없다. 생각해보면 고백해야 할 내용이 이밖에도 더 있다.
이런 것을 꼭 말로 해야 하나? 그렇다. 고백하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신의 고백은 오해나 갈등을 불식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고 신뢰를 강화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