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21세기형 인간 73] ‘쉬볼레트’와 ‘시볼레트’

[아시아엔=김희봉 현대자동차인재개발원, 교육공학박사] 히브리어로 ‘쉬볼레트’(schibbolet)는 ‘곡식의 이삭’이라는 뜻을 지닌 평범한 단어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기원 전 에브라임인으로 태어났다면 이 단어는 상당히 위험한 단어가 된다. 더욱이 특정 장소에서 이 단어를 잘못 발음해 “시볼레트”(sibbolet)라고 말했다면 타인에 의해 그 즉시 살해당할 수도 있다.

이는 성서의 사사기에 수록된 길르앗인과 에브라임인의 이야기다. 내용인즉 길르앗인들이 에브라임으로 가는 길목인 요르단 강을 봉쇄하고 강을 건너려는 에브라임인들을 색출해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이들이 에브라임인을 구별한 방법이 바로 ‘쉬볼레트’를 발음하게 한 것이다. 에브라임인들의 발음은 길르앗인들과 달라서 이 단어를 “시볼레트”라고 발음했는데 길르앗인들은 상대방이 이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들어본 후 자신들의 발음과 다르면 에브라임인으로 인식하고 살해했던 것이다.

그 당시 사용된 ‘쉬볼레트’는 상대방과 자신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질성을 확인해서 차별대우를 할 수 있는 암호와 같은 단어였던 것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과 사회문화적 환경이 변화되면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쉬볼레트”를 발음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생각, 방식 또는 성격 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차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쉬볼레트’는 아직 우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오늘날 존재하는 ‘쉬볼레트’는 ‘자만’이라는 옷으로 우리 마음 속 옷장 안에 걸려 있다. 우리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자만이라는 옷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 옷을 걸쳐 입는 순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을 차별하게 된다.

차별은 주로 상대방과 비교해서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우월감은 대개 개인적인 요소에 기인한다. 학벌, 성적, 직급, 직책, 경력 등 소위 ‘스펙’이라고 일컬어지는 내용이 포함된다. 자신이 단편적으로 경험한 몇몇 사례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 역시 우월감을 갖게 만드는 것 중 하나다.

미국의 사회학자 그래함 섬너(Graham Sumner)는 조직 내 관계적인 측면에서 차별을 바라봤다. 그는 조직 내에서 우리라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일컫는 내집단(in-group)과 그 관계 밖에 있는 구성원들을 일컫는 외집단(out-group)으로 구분했다.

문제는 차별이 가지고 오는 폐해에 있다. 차별의 종류나 크기에 관계없이 개인, 조직,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이를 인식하는 순간 서로간의 갈등과 상처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쉬볼레트 사례에 혀를 찼다면 이제 거울 앞에 서보자. 그리고 혹시 지금 내가 오늘날의 ‘쉬볼레트’라고 할 수 있는 ‘자만’이라는 옷을 걸치고 나와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않은지 확인해보자.

이와 함께 마음 속에 있는 옷장도 열어보자. 크건 작건 자만이라고 보여지는 옷들이 걸려 있다면 더 이상 미련 두지 말고 남김없이 정리하자. 나만큼 상대방도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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