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고난에 억눌린 사람들 보듬은 조태일의 ‘국토’

전남 곡성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뉴시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조태일은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서 출생. 12살 때 대처승이던 아버지가 별세했다. 유신독재 앞에서 ‘식칼’ 같은 시로 당당히 맞선 저항시인이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시집으로 <국토>(창작과비평사, 1975) 등이 있다. 조태일은 ‘소주에 밥을 말아 먹을’ 정도로 애주가였다.

올해 150주기를 맞은 마르크스는 일찌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치면서 “노동자에게는 국가가 따로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 등의 프롤레타리아와 소수자들에게는 현재 자기가 의탁하고 있는 땅 말고는 갈 곳이 없다. 오히려 부르주아들에게는 국가나 국토를 선택할 권리와 기회가 잘 보장된 것이 현대 신자본주의 세계의 특징이다.

여기 말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이름하여 민중들에게는 자기가 선 땅을 늘 새롭게 갈고 닦아야만 하는 운명이 주어져 있다. 자기 땅에 헌신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할 운명이 없는 것이다.

고난에 억눌린 사람들,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은 자기 땅의 ‘풀잎’, ‘돌멩이’, ‘혼’, ‘숨결’ 하나하나를 사랑하고 사는 것 이외는 달리 사는 방법이 없고 달리 사는 방법도 모른다. ‘야윈 팔다리’로라도 ‘삶을 불 지피고 숨결을 보태면서’ 살아야만 한다.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태’면서 말이다.

시인에게 ‘국토’는 어머니 자궁이며, 민중의 삶터요, 반역의 역사 앞에 맞설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국토 서시(國土 序詩)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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