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내 안의 화를 다스리려면···장자의 ‘빈배’

장자 <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녹색대 전 학장] 장자는 전국시대 사상가로 책 <장자>로 잘 알려져 있다. 중국 사상은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다. 공맹사상(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계승한 유가 학파)과 노장사상(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계승한 노장학파)인데, 장자는 노장학파에 속한다. 노장학파는 “말과 문제에 매이지 말라”는 붓다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중국 불교에서는 <장자>를 <남화진경>이라고도 한다.

불가에서 삼독(三毒)은 탐진치(貪嗔痴)를 말한다. 해탈은 삼독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그 삼독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독은 진(화, 성냄, 분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수행이란 화를 억제하거나 조정하거나 다스린다는 것이 아니라 화의 근본을 잘 살피면서 해소해 간다는 점이다.

본시 화란 내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통상 그 어떤 것이 나를 화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화가 내게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일을 할 때도 어떤 때는 좋고 어떤 때는 짜증이 날 때가 있고, 몸이 아플 때 싫었던 것이 몸이 회복되면 좋아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조건과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화를 내는 것이다. 몰론, 화라는 것은 내 마음이 외부의 조건에 움직이는 것이다.

장자의 빈 배에서 보듯이 화는 조건에 맞추어 일어난다. 만일 흘러오는 빈 배에 사람이 있으면 화를 내겠지만, 아무도 없었다면 자신이 탄 배와 그 배가 부딪힌다고 화를 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는다.

불교나 노장은 자아가 없는, 자아가 해소된 상태 즉 빈 배를 지향한다. 예수도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자신을 완전히 비웠다. 케노시스, 자기가 없어진 그 자리가 바로 하느님과 일체를 이룬 상태였다. 모든 종교는 빈 배로 살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빈배(虛舟)

방주이제어하 方舟而濟於河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유허선래촉주 有虛舟來觸舟

빈 배가 와서 그의 배에 부딪치면

수유편심지인불노 雖有惼心之人不怒

그가 아무리 성격이 나쁜 자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유일인재기상 有一人在其上

그러나 그 배 안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즉호장흡지 則呼張歙之 *歙 들이쉴 흡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일호이불문 一呼而不聞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재호이불문 再呼而不聞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어시삼호사 於是三呼邪 더욱 더 큰 소리를 지르면서

즉필이악성수지 則必以惡聲隨之 저주를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향야불노이금야노 向也不怒而今也怒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향야허이금야실 向也虛而今也實

만일 그 배가 빈 배라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인능허기이유세 人能虛己以遊世

세상의 강을 건너가는 그대 자신의 배를 그대가 비울 수 있다면

기숙능해지 其孰能害之

아무도 그대를 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장자(莊子 外篇 第20篇 山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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