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불교 36] 베트남④ 소신공양 틱꽝득·참여불교 틱낫한 스님

틱낫한(Thich Nhat Hanh)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혜가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불교 연재는 이번호가 ‘일단’ 끝입니다. <아시아엔>은 아직 다루지 않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이란, 이라크, 이집트 등 중동지역의 불교에 대해서도 보도할 것을 독자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편집자)

현대의 베트남불교: 20세기 중반 이후

[아시아엔=이병욱 고려대·중앙승가대·동국대평생교육원 강사] 1945년 8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베트남 남부는 영국이 제국주의 청산을 맡았고, 베트남 북부는 중국이 제국주의 청산을 맡았지만, 1946년 11월 프랑스가 관세를 문제 삼아 프랑스-베트남의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의 마지막 국면인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전투에서 베트민(북부의 베트남독립연맹)이 프랑스 군대에 승리하면서 1954년 7월 제네바협정이 이루어졌다. 이 제네바 협정에서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을 임시로 분단하고, 호찌민(Ho Chi Minh)의 정부군은 북위 17도선의 이북으로 옮겨가고, 프랑스군은 남부로 이동하였다.

제네바협상이 진행되던 때인 1954년 6월 바오다이(Bao Dai)는 응오딘지엠(Ngo Dinh Diem)을 수상으로 임명하여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였다. 그런데 지엠은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바오다이를 퇴위시키고, 1955년 10월 베트남공화국(사이공 정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63년 11월 군부쿠데타가 일어나 지엠과 그의 동생 누(Nhu)가 사망하였다.

지엠정권은 가톨릭을 보호하고 불교를 탄압하였다. 이에 임제종의 종장(宗長) 틱꽝득은 인권과 종교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비폭력항쟁에 참여하였고, 정부에 여러 번 간곡한 편지를 보내서 불교탄압을 중지해 달라고 촉구하였지만, 지엠정권의 불교탄압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에 틱꽝득은 1963년 6월 11일 판딘퐁(Phan Dinh Phung) 거리에서 가부좌를 한 채로 몸에 기름을 붓고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분신하였다.

이와 같은 틱꽝득의 소신공양(燒身供養)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와 함께 선(禪)의 자유를 실천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남베트남의 대중을 위해서 대수고(代受苦)의 자비행, 곧 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서 중생을 대신해서 고통을 받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선의 ‘깨달음의 자유’와 ‘사회제도의 자유’를 접목한 것으로, 몸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에서 나오는 자유와 불교탄압에 대한 자유를 동시에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틱낫한(Thich Nhat Hanh)

틱낫한(1926~ )은 1965년 미국에 가서 평화안을 제시한 뒤, 미국과 프랑스를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틱낫한은 참여불교를 주장한다. 그것은 단순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불교의 가르침을 이용하거나 사회적 불의에 항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불교를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들여서 자신의 평화를 발견할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자신의 평화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명상을 강조한다. 여기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사물을 깊게 보는 것이고, 어떻게 자신이 바뀔 수 있고 어떻게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 밝게 보는 것을 의미한다.

베트남불교의 현황과 전망

베트남 인구 8580만명(2009년 기준) 가운데 불교를 믿는 사람은 베트남 국민의 3분의 2가 될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 등록된 신자는 약 1천만명(전체 인구의 약 11.7%)이다. 전국적으로 도시와 지방에 사찰이 많이 있다. 가톨릭은 16세기경부터 포르투갈이나 프랑스 사제에 의해 전파되었는데, 신자는 약 550만명(전체 인구의 6.5%)이다. 개신교는 17세기경부터 전해졌는데 신자는 약 100만명(전체 인구의 약 1.1%)이다. 그리고 까오다이교 신자는 약 240만명(전체 인구의 약 2.8%)이고, 화하오교 신자는 130만명(전체 인구의 1.5%)이다.

베트남승가회는 2006년 현재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단체는 무료진료를 해주는 병원 700여개를 설립하였고, 165개의 학교, 16개의 유치원, 장애어린이 보육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원활동은 베트남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쿠바나 러시아의 체르노빌핵발전소 피해자 같은 다른 국가의 불우한 이웃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2006년 현재 인도주의 활동기금으로 4000억 VND(미화 2480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하였다.

베트남 VNA통신에 따르면, 베트남승가회에는 2006년 현재 3만9371명의 비구와 비구니가 있고, 사찰은 1만3775개가 소속되어 있다. 베트남승가회에는 4개의 불교협회를 두고 있는데, 특히 하노이, 호치민, 후에에 있는 3개 협회에서는 2006년에만 1900명의 비구와 비구니가 교육을 마쳤고, 1200명의 승려가 공부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승가회는 8개의 대학 수준 훈련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31개의 고등학교, 100여 개의 불교초등학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매년 우수한 비구와 비구니를 인도, 미얀마, 미국, 호주, 중국, 스리랑카, 프랑스 등의 나라에 유학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불교 중앙승가위는 1980년 10개 종파가 연합하여 만든 베트남불교의 최고협의기관이다. 그 이전에는 지역별로, 곧 남부, 중부, 북부로 나뉘어 있었다. 이 중앙승가위는 1989년 이전까지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1989년 재정비된 이후에는 확고한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당에는 종교를 담당하는 부서가 없기 때문에 중앙승가위에서 자율적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이처럼 베트남불교가 사회주의정권 아래서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베트남불교가 중생, 곧 인민의 편에 서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정권과 독립투쟁을 할 때는 불교사원은 독립투사들의 양성소이자 피난처 역할을 했다.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이 분열되었을 때에는 북베트남 승려들은 자진해서 군인이 되었고, 북베트남의 불교도는 남베트남의 승려 및 불교도와 신앙적인 측면에서 하나가 되었다. 이는 나라는 분열되었지만, 불교의 신앙에서는 하나가 되었다는 말로, 그만큼 불교가 베트남 통일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또 베트남 통일 이후에는 국민의 재교육이 필요했는데, 베트남 남부의 사찰은 저녁때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재교육 장소로 크게 활용되었다.

베트남에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섰지만, 이웃 나라 캄보디아에서처럼 대량학살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의 하나도 불교의 자비에서 찾을 수 있다. 베트남 통일에 기여한 남부와 북부의 승려와 신도들이 살생을 반대하였고, 그에 따라 베트남 사회주의정권에 의해 ‘공민부적격자’라고 판정받은 사람들이 선박을 이용해서 베트남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교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1976년 베트남이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된 뒤 일부 승려들이 여러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종교의 자유를 요구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서구로 망명을 떠났지만, 베트남에 남아 있던 저항세력들은 베트남불교연합(UBCV) 등의 반정부단체를 만들고 지하운동에 들어갔다. 베트남불교연합은 1981년 베트남정권에 의해 반정부단체로 규정돼 전재산을 몰수당하고, 사무실을 강제로 철거당했다. 베트남불교연합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 인터넷을 통해 베트남 사회의 인권탄압과 종교탄압을 세계여론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 단체의 요구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베트남에서의 종교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고, 둘째 베트남불교연합의 정치적 활동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단체에서는 2005년 1월 틱낫한의 베트남 방문도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베트남 정권이 틱낫한의 방문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와 교류

한국불교와 베트남불교의 교류는 1990년대 후반에야 물꼬를 텄다. 1996년 4월 16일 당시 〈법보신문〉의 대표 설조 스님, 조계종 포교원장 이성타 스님, 〈법보신문〉 박경훈 주필 등 8명의 일행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했다. 한국불교 방문단은 도무오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베트남불교 최고지도자인 불교연구원장 킴퀑투 스님을 예방하고, 베트남 정부 종교위원회 부쟈탐 위원장과 만나서 한국과 베트남 불교계의 공식교류 추진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베트남편 끝)

필자 이병욱

고려대 강사.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술로 <천태사상연구>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한국불교사상의 전개> <불교사회사상의 이해> 등이 있다. 현재 중앙승가대, 동국대 평생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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