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종교 18] 미얀마⑤···위빠사나 수행법 등 한국과 교류 ‘활발’

아웅산 수치 여사(왼쪽)와 네윈 장군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총이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아시아엔=조준호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얀마는 ‘불교, 국가, 승가, 국민’이라는 네 요소의 관계로 설명된다. 이 네 요소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여 사회적 통합력을 유지해 왔지만, 영국 식민지배 기간에는 이러한 관계가 단절되었다. 즉 영국 식민정부에 의해 국가와 기타 세 가지 요소인 불교, 승가, 국민의 긴밀한 관계가 성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뷸교 국가 승가 국민’ 4요소 역사적으로 불가불 관계

식민정부가 불교의 후원자나 보호자 같은 역할과 기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의 미얀마 식민지배의 주요 실패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미얀마 민족주의 운동이 가속화된 원인이기도 했다. 미얀마는 독립과 함께 국가와 승가 그리고 국민의 긴밀한 전통을 회복하였다.

우누는 독립한 미얀마의 초대 수상으로서 불교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조화를 시도하는 정책을 폈다. 계속해서 여러 불교 진흥책과 불교 국교화를 추진하려 했다. 그의 정책은 국민적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불교 국교화를 반대하는 종족과 종교의 반발을 야기했다. 결국 그러한 시책은 미얀마 정국 불안의 요인이 되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빌미를 제공했다.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네윈(Ne Win)은 불교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입장을 견지했고, 이후 오랫동안 미얀마는 정치·경제적으로 정체를 면치 못해 왔다. 그 과정에서 군부에 항거하는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었으며, 군사정권은 개혁·개방과 민주화를 약속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독립 이후 네윈을 포함한 미얀마의 모든 정권은 불교와 사회주의를 결합하는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했다. 최근에는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야당 지도자인 아웅 산 수 치가 집권한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불교의 모습이 새롭게 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얀마 국민의 불교 신봉 태도는 변함없을 것으로 보인다. 1948년 독립 이후 국제적 차원의 제6차 경전 결집 등을 개최하여 국내외에 미얀마불교의 역량을 과시하였고, 국제적으로도 세계불교회의를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에는 부처님 성도 2600주년을 기념하여, 12월 15일부터 17일간, 세계 불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다양한 행사를 국가적 차원에서 개최하였다.

불교신도 인구의 90% 육박

일반적으로 미얀마의 불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89%로 추정하지만 최근 조사에 의하면 87.9%로 약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불교 외에는 기독교(침례교와 가톨릭) 6.2%, 이슬람교 4.3%, 낫(Nat) 신앙(토속종교) 0.8%, 힌두교 0.5%, 기타 0.2%, 무교(無敎) 0.1%라고 한다. 2014년 이전의 자료에서 나타난 통계인 불교 89%, 기독교 4%(침례교 3%, 가톨릭 1%), 이슬람교 4%, 기타 3%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민족 구성과 관련해 불교 인구의 90%가 버마족이며, 그 밖에는 샨족이나 몬족 등이다. 외국 선교사에 의한 미얀마 국내 선교는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미얀마에는 5만8399개의 사찰이 있으며 출가자 수는 비구(比丘) 22만6508명, 사미(沙彌) 2만5834명 그리고 여성출가자(Thila-shin)는 3만명에서 9만명까지로 추산한다. 여성출가와 관련하여 미얀마는 사미니나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8계나 10계를 준수하는 틸라신(Thila-shin)이라는 여성출가자를 인정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여성출가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미얀마정부 9개 종파 공인

불교 승단과 종교를 관리하는 미얀마는 정부기관으로 종교성(宗敎省, Ministry of Religious Affairs)이 있다. 미얀마불교 종파는 1990년 승가조직법(The 1990 Law Concerning Sangha Organi-zations)에 의해 공인된 9개 종파(Nikaya)가 있다.

수담마(Sudha-mma, 또는 뚜담마), 셰진(Shwegyin), 마하드와라(Mahādvāra), 물라드와라(Mūladvāra), 아나욱차웅드와라(Ana-uck Chaung dvara), 웰루완(Veḷvan), 켓뜨윈(Hgettwin), 가나위묵(Ganavimukkutho) 그리고 마하인(Mahayin)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18세기 후반에 창종한 수담마는 가장 큰 종파로 출가자의 85~90%를 차지한다. 이 종파는 영국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운동과 군부독재에 대한 민주화 운동 등에서처럼 사회와 정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다음으로 셰진은 19세기 중반에 수담마로부터 분종한 파로서 약 5% 정도이다. 셰진은 수담마보다 엄격하게 계율을 강조한다. 셰진은 수담마와는 반대로 영국 식민지배에 대한 국수주의적 저항운동에 비참여적인 경향을 보여왔으며, 1960년대에는 군부의 네윈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종파들 사이에 교학이나 수행상의 큰 차이점은 없다. 하지만 계율을 지키는 수준과 착의법 등의 세부적인 계율 규정이 종파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수담마는 우산의 사용, 흡연과 꽁야(Kun Ya, 씹는 담배) 등을 허용하는 반면, 셰진은 엄격하게 금지한다. 수담마는 사찰 안이나 밖에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복식 차림인 데 반해 셰진과 드와라는 외출 시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는 통견(通肩)을 하는 차이가 있다.

식민지배 군사통치 등 한국과 유사점 많아 

중국은 남진정책의 일환으로 미얀마와 불교를 매개로 하는 교류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인도 또한 중국을 견제하는 동방정책으로 미얀마와 불교 교류를 경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한국불교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미얀마의 불교문화 유적을 순례하는 한국의 성지순례단과 위빠사나 수행센터를 찾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법은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한국에 미얀마 이주민을 위해 여러 미얀마 사찰이 건립되어 상좌부불교가 행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얀마에 한국 사찰(미얀마 고려사-담마마마까)도 건립되었고 양국 간 여러 방면에서 불교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미얀마의 역사 환경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각각 영국과 일본이라는 제국주의의 식민 경험이 있고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 형성되는 민족주의가 그것이다. 민족주의는 다시 군부 통치를 허용하는 혼란스러운 정치적 환경으로 나아가 오랜 군사독재와 다시 이에 저항하는 민주화 흐름도 그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역사적 인과(因果)로 한국은 남북 분단의 현실, 미얀마는 종족 간 종교 간 갈등과 경제발전의 침체라는 여파가 상존하게 되었다. 물론 양국은 서로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은 수출 지향의 자본주의로 경제적 발전을 이룬 반면, 미얀마는 사회주의적 성향의 정책으로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시간이 멈춘 나라’로 경제적 후진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불교는 역사적으로 미얀마 국가의 정체성과 사회통합의 구심점으로 작용해 왔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불교는 앞으로도 미얀마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적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미얀마편 끝)

미얀마 불교의 필자 조준호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동국대 및 인도 델리대 불교학과 석사·박사를 받았다. BK 21 불교사상연구단,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대승의 소승폄하에 대한 반론’ ‘위빠사나 수행의 인식론적 근거’ 등이 있으며, 저서로 <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 등과 <인도불교 부흥운동의 선구자-제2의 아소카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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