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목격하고 “내 잘못”이라 용서 빈 ‘스님 이야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주 <아시아엔> 독자와 나눈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에 대해 마무리할 차례다. ‘조견오온개공’의 결과가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다. ‘도일체고액’은 “일체의 괴로움을 건너간다”는 말이다. 일체의 괴로움을 건너간다는 말은 결국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상태를 뜻한다.

‘도’(度)라는 말은 ‘건너다’ ‘제도한다’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도’란 괴로움의 세계에서 즐거움의 세계로 건너가는 도피안(度彼岸)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또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들을 건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도’의 의미는 일체의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말한다.

다음으로 ‘일체’라는 말은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는 뜻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일체’라는 말을 잘 쓴다. ‘일체’의 의미를 보다 선명히 이해할 수 있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

어떤 스님이 길 가다가 우연히 부부싸움 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데 스님은 갑자기 싸우는 부부 앞에 나아가 자기가 잘못했노라고 용서를 빌었다. 그들 부부는 생전 처음 보는 알지도 못하는 스님이 잘못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스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문제 속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일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일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체’라고 하는 말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 ‘고액’의 의미는 ‘문제’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인간에게 문제는 시시각각 일어나는 것이며, 도처에 산재해 있다.

예를 들어 몸에 병이 나서 아픈 것도 문제이며, 남편의 승진도 문제이며, 자녀의 진학도 문제에 해당된다. 이러한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마음은 늘 괴롭고 어두운 상태가 된다. 문제란 우리에게 아프고 쓰라린 강물과 같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고액’은 넘고 또 넘어야 할 거대한 산과 같으며, 건너고 또 건너야 할 엄청난 강이다. ‘고액’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뇌리에 남아서 우리를 괴롭힌다. ‘고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는 몸과 마음이 텅 빈 것이라는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말한다.

우리에게 아무리 아프고 괴로운 일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텅 비어서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괴로움이 아니다. 즉 괴로움의 실체는 없는 것이다. 존재의 실상이 공하다는 인식에서는 일체의 고통이 저절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은 바로 불교의 목적이며, 우리 인생의 길잡이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불법(佛法)의 진수를 깨닫는 것이며, 불교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나머지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반야심경>은 우리의 몸과 마음 즉, 육신과 정신을 텅 빈 것으로 관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저 피안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