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알파고 기자의 한국·한글 사랑, “취미가 공부로, 공부가 직업으로”

알파고 시나씨(Sinasi Alpago) 전 터키 지한통신사 서울특파원은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터키인이다. 그는 만나는 한국인마다 반기며 “터키와 한국은 형제나라”라고 말한다. 한국생활 15년, 한국인을 아내로 맞이한 절반은 터키인, 절반은 한국인이나 다름없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공동대표 송인수 윤지희)이 최근 알파고 기자를 인터뷰했다. <아시아엔>은 알파고 기자 인터뷰 전문을 독자들께 전한다.(편집자)

한국 사회에서 ‘공부’만큼 뜨거운 주제가 또 있을까. 그런데 거기에 ‘꿈이 있는 공부’라니! 고등학교 때 즐겨보는 잡지의 호수를 맞추는 취미에서 공부가 시작되었다는 강영안 선생님의 일화를 듣고 취미가 공부이자 직업으로 이어진 사람이 떠올랐다.

최근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헤이북스)라는 책을 펴내고 강연 활동에도 열심인 터키인 알파고 시나씨(Sinasi Alpago) 기자를 만나게 되었다.

전선영(이하 전): 알파고 기자님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셨는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셔요.

알파고(이하 알): 한국에 오기 전에는 과학고등학교에서 과학 올림피아드나 프로젝트 등에 매진했던 과학도였어요. 한국 카이스트에 공학 공부를 하러 유학 왔지만 한국어 연수를 하는 동안 제 삶을 재검토하면서 나는 숫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까지 해왔던 공부를 180도 뒤집어 충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어요. 대학원 재학 중에는 터키 지한통신사의 제안을 받아 한국 특파원으로 발탁되어 기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6년간의 특파원 기자 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하베르코레(Haber Kore)라는 한국 중심의 동북아 뉴스를 전하는 포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요. 저술활동과 강의도 하면서 현실에 굴복하지 않을 정도의 생활비를 벌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180도 달라진 인생

: 이공계에서 인문계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한국어 연수라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셔요.

: 유학 오기 전에는 과학 공부에만 몰두하다 보니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특히 영어 수업이 힘들었고 성적도 저조했죠. 다른 수업은 거의 만점을 받았지만, 영어는 100점 만점에 40~50점을 받을 만큼 성적이 정말 나빴어요. 그런데 한국에 유학을 오니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공부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걱정으로부터 멀어져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기회를 만난 거예요. 그러던 중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된 거죠. 한국어는 제게 새롭고 낯설지만 매력 있는 언어였어요. 모국어인 터키어와 어순이 비슷해서 영어 공부할 때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내가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하네, 성적도 잘 나오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저의 학습 능력을 재검토하기 시작했죠. ‘내가 외국어를 못하는 게 아니구나, 언어 공부도 즐겁게 잘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기니 다른 사람들이 언어로 인해 하지 못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그 당시 사회학이나 인문학은 언어 때문에 터키 유학생들이 기피했어요. 공대 이외의 계열은 경제학과나 영어강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전부였죠. 하지만 난 정치외교학 공부도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 인생의 대전환을 하게 만든 언어였기 때문인가요, 최근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라는 첫 책을 출간하셨는데 한국어로 쓰셨어요. 지금 나누는 인터뷰를 통해서도 알파고 기자의 한국어 실력을 확인하고 있지만, 외국어로 책을 쓰는 작업은 또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한국어로 책을 내시게 되었나요?

: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려면 과제물부터 졸업논문까지 전부 한국어로 써야 되잖아요. 그 정도 쓸 줄 안다면 책을 왜 못 쓰겠나,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책 이야기 전에 우선 한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과에서 공부할 때였는데, 매주 과제물과 리포트, 시험 등 장문의 글을 쓰잖아요. 어느 날 시험지를 쓰고 있는데 제가 생각해도 제 글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한국 신문에 사설로 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썼어요. 그래서 그 답안지를 그대로 ‘아시아엔(Asia N)’의 이상기 회장님께 보내드렸는데 그게 웹 페이지에 기사로 실렸어요. 게다가 이 회장님이 이 정도 쓸 수 있으면 매주 기사를 써보라고 제안하셔서, 그 뒤로 3, 4주에 한 번씩 한국어로 글을 쓰게 되었죠. 그 후 여기저기서 제안을 받아 계속 글을 쓰게 되었어요.

취미가 공부로, 공부가 직업으로

: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책을 펴낼 수 있는 것은 아닌데요, 책을 쓰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제 취미인 화폐 수집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죠. 고3 때부터 세계 화폐를 모으기 시작하며 화폐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도 만들었어요. 그러던 중 뉴스위크에서 아시아엔에 올린 제 글을 보고 제안을 했어요. 한국어판 마지막 페이지에 싣는 ‘외국인 전문가가 보는 한국’이라는 주제의 글을 써달라고요. 그래서 아시아엔과 뉴스위크에 동시에 글을 쓰게 되었죠. 이때 글 내용, 구성, 구도 등을 잡는 일부터, 같은 생각이나 논리를 반복하면 안 되는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죠. 너무 힘들어져서 아시아엔에 기고를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이 회장님이 일상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쉬운 주제로 써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수집하면서 공부하고 있던 화폐에 대해 쓰겠다고 했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지지해주셨어요. 사실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나중에 책을 써보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어요. 물론 당시에는 터키어로 쓰려고 했지만요. 그러다가 그 글을 본 한 출판사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죠.

: 화폐 수집이라는 취미 활동을 통해 책을 쓰겠다는 꿈을 키워오신 거네요. 제목도 심상치 않은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라는 책은 어떤 내용인가요?

: 예를 들어 100달러에 인쇄된 프랭클린의 삶부터 시작해서 최근 200년 세계사의 흐름을 요약하는 거예요. 벤자민 프랭클린을 통해 미국의 독립전쟁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전개 과정을 이야기하며, 1달러의 조지 워싱턴이 어떻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지, 2달러의 토마스 제퍼슨을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수립되고 확산되었는지, 다음에는 10달러 알렉산더 해밀턴이 미국 경제 구조를 어떻게 확립하였는지, 20달러의 앤드류 잭슨을 통해서 민주당의 수립과 선거제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다음에는 5달러를 통해 미국 내전 과정, 그리고 50달러를 보며 내전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설명하며 미국 이야기가 끝나요.

각국 화폐에 담긴 인물과 역사 이야기

: 화폐를 통해 한 나라의 역사를 훑어 내리는 이야기 구조가 흥미로워요. 미국 화폐만이 담고 있는 특징인지, 다른 나라 화폐는 어떤지 궁금해져요. 이런 역사의 흐름에 따른 화폐 이야기 구조는 본인의 생각인가요?

: 전 처음에는 백과 사전식으로 국가명 순으로 화폐의 인물과 건축물 별로 짧게 짧게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출판사에서 각 나라마다 하나의 흐름을 잡고 다양한 화폐 이야기를 하나의 키워드로 찾아보라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건국에 영향을 미친 인물을 중심으로 끌고 가되 현대인에게 필요한 도전 의식을 키워드로 잡아서 구성했어요. 미국 다음으로는 그 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이 어떻게 독립했는지 궁금하니 멕시코 화폐를 통해서 식민지 과정과 독립전쟁의 시작과 전개 과정, 멕시코라는 나라가 어떻게 탄생하고 내전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는지 이야기했어요. 다음으로 남미 베네수엘라로 가죠. 게다가 남미에는 스페인 식민지만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 화폐를 통해서 브라질 역사를 다루는 거죠. 아시아 대륙으로 넘어오면 인도네시아 내전, 인도, 파키스탄, 네팔 그 주변국인 중앙아시아의 나라들 즉 돌궐의 후예들인데 어떻게 러시아로 이주했다가 독립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하다 보니 가까운 터키도 궁금해져 오스만제국 말기부터 터키 공화국의 선포 시기를 다루었어요. 그리고 극동아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대만, 중국, 일본을 이야기하며 200년 역사가 끝나요. 마지막 5장과 6장은 화폐에 그려진 건축물이 있는데 건축 양식의 발전에 따른 유럽 역사 이야기로 풀어냈어요.

: 전 세계의 다양한 나라 이야기들이 있지만 아쉽게도 한국어로 쓴 책에 한국 화폐 이야기는 빠졌더군요.

: 한국 화폐의 인물들은 대부분 성리학자예요. 이번 책은 건국 영웅을 키워드로 잡다 보니 한국 화폐를 책에 넣었다면 이런 흐름이 깨졌을 거예요. 그리고 한국 분들께 한국 역사를 알려드리는 것도 어이없는 일인 것 같았어요.

싱가포르 화폐에는 소수민족 말레이계가?

: 화폐 수집이 취미인 사람들은 많이 봤고 대부분은 수집에 그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알파고 기자는 취미가 어떻게 공부로, 책 출판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 듣고 싶어요.

: 수집한 화폐를 관리하느라 자꾸 들여다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화폐 속의 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지고 때로는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면 화폐에 대해 물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궁금할 때마다 찾아서 공부하기 시작했죠. 제가 처음 궁금해서 알아본 화폐는 싱가포르 화폐였어요. 싱가포르는 인구의 77% 이상이 화교, 중국 사람이에요. 12% 정도가 말레이계라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폐에는 독점적으로 유솝 빈 이스학(Yusof bin Ishak)이라는 말레이계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싱가포르 화폐에 4개 언어가 씌어 있는데, 싱가포르의 공용어인 중국어, 영어,말레이어 그리고 타밀어예요. 하지만 말레이어가 국어예요. 그러니 궁금하지 않겠어요? 살펴보니 원래 말레이 민족의 땅인 이곳에 영국으로 인해 중국인들이 지배하게 된 거더라고요. 12%의 말레이계가 자극을 받아 중국계에 반항하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로 둘러싸인 싱가포르에서 중국계가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말레이계의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는 거였어요. 이런 식으로 화폐를 통해 궁금해진 내용들을 공부하게 되었죠.

공부는 단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 알파고 기자님은 직업 외에도 한 번 해보겠다는 도전이 대부분 일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인 것 같아요. 기자, 저술 활동, 강연, 최근에는 스탠딩 코미디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어학을 가장 어려워하다가 말하고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된 과정을 보면 취미가 공부나 직업으로 이어졌는데, 알파고 기자님은 어떤 것이 공부라고 생각하세요?

: 제 생각에 한국은 너무나 ’학’문적인 사회예요. 신기할 정도로 예전부터 학문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 같아요. 하지만 제게 공부는 학술적인 의미가 많지 않아요.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죠. 예를 들어 터키 차를 마시고 싶은데 만들 줄을 몰라요, 그럼 만들어 마실 수 있도록 아는 사람에게 가르쳐달라고 해서  배우고 연습하면 그것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공부를 너무 학술적인 의미로만 바라보면 그런 학술적 감각과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일이 되잖아요. 제게 공부는 단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일 뿐, 그게 공부예요, 끝! 학문만이 공부라면 자기 본성에 맞는 공부를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공부가 싫어요’라는 말은 지금까지 자기가 싫어하는 분야의 공부를 했다는 것이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를 찾지 못했다는 거죠.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는 신나잖아요. 스타크래프트 공부를 하는 것이 즐겁다면 그 분야의 공부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활동이 100% 직업으로 연결될 수 없어도 어느 정도는 관련된 직업과 연결한다면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지 않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자기가 하는 일 속에서 취미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찾아야 해요. 저도 아시아엔에 기고할 내용이 계속 정치적인 내용이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제 관심 분야의 글을 쓰니 계속할 수 있었어요. 사무직이라도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경제기관이 아니라 교육 관련 분야의 일을 하는 거죠. 자신의 관심사와 하나라도 접촉되는 일을 찾아야겠죠. 그래서 자신을 잘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씀드렸듯이 저도 한국어 공부를 통해 저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6년 동안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공부를 제 직업 속에 빠짐없이 활용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대학원에서 전공과 무관해도 제가 관심이 가는 다른 과 수업을 찾아 들었기 때문이에요. 재미있어야 신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알파고 기자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에 부모님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부모님의 영향력으로부터 멀어진 시기에 오롯이 혼자 새로운 삶과 마주쳐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도전에 맞섰다. 공부는 그렇게 자신과 마주치는 순간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거창한 정의도 아니고 전에 들어보지 않았던 말도 아니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는 과정, 그러니 나를 발견하는 것부터가 공부’라는 알파고 기자의 한마디가 내내 울림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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