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to You···미국서 맛보는 생일 이벤트 이모저모
[아시아엔=손영아 <아시아엔> 미 LA 통신원] 지난해 여름 쉰살 생일파티를 했다. 해마다 오는 생일이 뭐 그리 대수냐는 사람도 있지만 내겐 어떤 기념일보다 생일이 중요하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면 오래 살라고 백설기를 한다. 점지해 주신 삼신할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또 1년을 무사히 살아남은 기념으로 첫 돐 잔치를 한다. 옛날에 면역 약한 아기가 살아남기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렇게 크게 잔치까지 했을까 짐작할 수 있는 풍습이다.
1년을 살아남았으니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 살 거라고 믿고 돌잡이로 그 아이가 미래에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지 점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잔치의 모습이 많이 변질되어 간다. 잔치란 자고로 남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일부러 시간 내어 와서 축하와 덕담을 주는 손님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또 좋은 일로 복을 받으려는 기원도 있다. 그런데 실상은 경쟁적으로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한 두꺼운 앨범을 만들고 화려한 장식이 된 홀을 빌려 축의금을 받아가며 파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를 위한 잔치인지 알 수가 없다. 하객 대부분이 진심 어린 축하보다는 마치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모인다. 초대하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뿌린 만큼 거두리라 뭐 그런 심정이랄까.
내가 미국 남가주 작은 도시로 이사온 것은 10여년 됐다. 한국 사람이 아주 많은 곳이 아니어서 어쩌다가 아이들 학교는 물론 시장이나 길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운 좋게 아이 또래의 한국 친구들을 꽤 만났다. 자연스레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 학교 간 사이 차를 마시거나 시장을 함께 가는 정도다. 함께 운동도 하고 같은 종교모임을 갖지만 특별히 모일 일은 없다. 그나마 어느 집 아이의 생일이라도 있으면 돕기도 할 겸 모여서 좀더 오래 얘기하고 논다. 대부분 모임은 아이들 스케줄이 정한다.
아이들 생일파티는 나이나 성별에 따라, 혹은 아이의 취미에 따라 다르다. 어린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전문적으로 하는 피자집은 토큰을 넣어 하는 게임기와 간단한 놀이 기구가 있다. 그 피자집의 캐릭터 인형을 쓴 사람이 직접 나와 축하해 주면 아이들은 유명연예인을 만난 듯 즐거워 한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은 실내 놀이터나 스케이트장, 볼링장, 혹은 극장 등에서 파티를 한다. 어디를 가나 파티 음식은 피자와 케이크가 전부다. 물론 개인적으로 더 다양하게 준비도 하지만 대부분 놀기 바빠 테이블에 앉아서 축하하고 먹는 시간은 30분 정도다. 친구들은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 오는데 그 선물에서 한국 친구들과 미국 친구들의 차이점이 보인다. 아이가 어릴수록 더 그렇다. 한국인들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기도 하는데다 너무 약소하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에서인지 상대적으로 고가의 상품이나 상품권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 친구들은 작은 선물이나 심지어 그냥 카드만 만들어 오기도 한다. 가끔 돈을 주기도 하는데 그 액수가 귀엽다. 5달러나 10달러, 꽤 큰 아이들도 자기 용돈 아껴서 15달러 정도 주기도 한다. 어떤 친구는 나이만큼 선물한다. 우리 아이도 8살 생일에 8달러를 받았다. 그런 식으로 하면 오래 살아도 100달러 넘게 받기는 힘들겠다.
생일파티에는 구디백이라는 게 있다. 주인공이 파티에 온 친구들에게 주는 답례품이다. 캔디나 학용품, 과자 등이 들어있다. 간혹 아이스크림전문점 상품권이나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액수가 크지는 않다.
미국 아이들 역시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틴에이저가 되는 13살 생일이나 면허를 딸 수 있는 16세 성인이 되는 날이 그렇다. 여자아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와이너리의 클럽하우스를 빌려서 드레스를 입고 성대한 의식과 함께 파티를 하는 유태인 여자아이도 봤다. 석달치 월급을 다 쏟아부어 딸의 생일파티를 했다는 친구네 공장직원인 어느 멕시코인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그런 파티에 초대받아 가는 친구들은 무척 부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나이가 되면 사춘기가 되어 파티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냥 친구들과 영화나 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들이 모일 일도 줄었다. 내 주위의 친구들은 대부분 어른이 되어 미국에 온 사람들이라서 동창이나 어린 시절 친구가 주위에 없다. 그래서 나이를 떠나 아이들이 친구면 우리도 친구가 된다. 아이들 생일같은 명분이 없으면 모일 일이 없고 그래서 한국 친구들하고 연락하며 향수병에 빠지기도 한다. 생일날에 더 그랬다.
어느 날 내가 제안을 했다. 다 같이 모일 기회를 만들어 즐거워 할 일을 만들고 싶었다. 바로 생일파티! 주변의 지인들이 일종의 규칙을 정해 다같이 생일파티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파티라는 말에 조금 부담을 갖던 사람들도 서로 의견을 내어 조율하면서 규칙을 정하자 무척 반기는 눈치였다. 우리 모임은 모두 10명이다.
생일을 날짜 순서대로 적으니 대충 한달에 한번 꼴이었다. 겹치는 달도 있고 없는 달도 있다.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꼭 본인 생일에 파티를 할 수는 없다. 대신 생일 즈음, 주인공은 물론 가급적 많은 이들이 참석할 수 있는 날을 정한다. 장소는 주인공이 가고 싶어하는 레스토랑으로 정한다.
주로 집에서 살림만 하고 외식도 남편이나 아이들 위주로 하는 주부의 생일파티를 주인공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다. 선물도 답례품도 없다. 대신 꽃다발과 축하카드, 케이크를 준비한다. 비용은 주인공을 제외한 참석 인원수대로 나눠 낸다. 모든 준비는 다음 생일 주인공이 한다. 주인공은 즐겁게 먹고 놀다 남은 케이크와 꽃다발을 들고 돌아간다. 친구들은 큰 부담 없이 축하하러 온다.
가끔 특별이벤트도 한다. 40, 50처럼 좀더 의미 있는 생일을 맞이하는 경우에는 풍선과 축의금을 만들어 주는데 50달러 내지 100달러 정도를 모아서 선물한다. 어느 집에 파티 준비를 다 해놓고 주인공을 불러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각자 한두 가지 음식을 해와서 파티를 한다.
우리에게 생일파티는 주인공을 좀더 배려한 친목모임이다. 그리고 아이들 위주로 사는 주부들에게 누구의 엄마가 아닌 ‘아무개’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이다.
얼굴보다 더 큰 ‘50’이라는 숫자가 붙은 풍선을 내 의자에 묶어두고 식사하는 동안 레스토랑의 다른 손님들까지 지나가면서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넨다.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에 우울할 수도 있는 생일이 자랑스러운 날이 되었다. 친구들이 작은 파티용 왕관도 씌워줬다. 고급 브랜드의 선물 대신 사소한 소품 하나에도 기분은 20살 생일에 받았던 꽃다발만큼이나 좋았다. 그 어떤 선물보다 즐거운 추억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