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4반세기 통치하는 두 여성 정치인

nisi20160405_0011550357-620x384
Khaleda Zia

[아시아엔=샤흐와트 리톤 방글라데시 <The Daily Star> 기자] ?방글라데시는 여성 정치 리더십의 새로운 연구 사례가 되었다.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진 지난 100년간 지구상 어떤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다.

방글라데시는 1991년부터 지난 25년 동안 셰이크 하시나와 칼레다 지아 두 여성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돼 왔다. 두 여성은 방글라데시 주요 두 정당 ‘Awami League’(AL)와 ‘Bangladesh Nationalist Party’(NP)를 지난 30년간 이끌어 왔다. 이들의 지도 아래 두 정당은 1991년부터 차례로 정권을 잡았다. 군사정권을 몰아낸 시민 주도의 거리혁명을 1990년대에 이끌고 현재의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결과다.

현재 3명의 여성이 방글라데시 3개 헌법기관 중 2곳을 이끌고 있다. 국부인 방가반두 무지부르 라흐만(Bangabandhu Mujibur Rahman) 왕자의 딸 하시나(Hasina)는 현재 방글라데시의 3선 총리로 국회를 이끌고 있다. 그녀는 1990년 12월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1991년 민주주의 복권 이후 야당대표를 두번 역임했다.

90년대 시민들의 시위에 물러난 군사정권 독재자 에르샤드(Ershad)의 아내 라우샨 에르샤드(Raushan Ershad)는 현재 야당 대표다. 여당인 AL의 쉬린 샤르민 초우두리(Shirin Sharmin Choudhury) 의원은 현재 국회의장을 연임하고 있다.

또 다른 군사정권 독재자 지아우르 라흐만(Ziaur Rahman) 장군의 미망인 칼레다 지아(Khaleda Zia)는 1991년 이후 3번 총리직을 맡았다. 그는 전세계 이슬람 다수 국가에서 최초로 당선된 여성총리다. 그녀 역시 BNP의 대표를 두번 역임했다.

칼레다와 BNP는 2014년 총선 보이콧의 결과로 의회정치에 참여 길이 막힌 상태다. 그러나 BNP는 여전히 여당 AL 최고의 대항마다. 현재 의회 제1야당인 ‘Jatiya Party’(JP)는 BNP 보이콧이 남긴 공백에 AL의 환영을 받으며 의회 최대 야당으로 등장했다.

하시나와 칼레다의 정치적 부상은 우연적이지만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 이루어졌다. 둘 중 누구도 정치 경력은 없었다. 무지부르 라만 왕자는 1975년 지아우르 라흐만 장군은 1981년 살해당하고 AL과 BNP는 정치적 내홍을 겪는다. 두 당 모두 내분에 휩싸이고 하시나는 1981년 AL을, 칼레다는 1984년 BNP을 장악한다.

sheikh-hasinajpg-620x349
Sheikh Hasina

하시나가 정권을 잡은 시점은 계엄령이 철회된 지 2년이 지난 후였다. 지아 장군은 1975년 무지부르 왕자가 잔인하게 암살되고 첫번째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정국을 대체로 주도했으며 하시나가 AL의 당권을 잡은 당시에도 역시 그랬다.

칼레다가 정권을 잡을 즈음 에르샤드 장군은 두번째 계엄령을 선포한 상태였다. 하시나와 칼레다는 야당을 이끌고 에스샤드 정권을 내치는데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정당을 하나로 통합해 선거승리와 정권창출을 이끌었다. 그 후 수년간 이들은 최고 권력자에 부합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내각을 장악하고 인사권을 독점했으며 헌법에 따라 국가권력을 통합했다. 근대 민주주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강한 정치적 지도자 모습이다.

지난 25년 동안 많은 여성들이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중 일부는 장관직에, 또 다른 이들은 지방정부의 수장이 됐다. 그러나 하시나와 칼레다의 부상에는 어두운 이면도 존재한다. 이들의 정치적 억압 및 통제는 방글라데시의 평화와 번영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들의 절대권력은 당내 민주화를 축소시켰다. 정당의 비민주성은 정부기관 전체에도 영향을 주었다. 당이 권력을 잡은 정부기관은 더 이상 민주적인 운영에 관심이 없었다. 개인적 야망과 변덕 등에 의해 민주적 가치와 규범이 무너졌다. 적대적인 정치문화가 당연시되고 정치활동은 단속을 받아야 했다. 하시나와 칼레다 사이의 정치적 경쟁은 두사람을 앙숙관계로 만들었다.

2004년 칼레다가 정권을 잡았을 당시 하시나는 거리집회에서 수류탄 암살 시도를 겨우 피한 경험이 있다. 칼레다의 맏아들 타리크 라흐만은 런던에 8년째 망명생활 중이고 BNP 지도부 일부는 암살의혹에 연루됐다.

하시나는 1994~1996년 사이 거리시위를 통해 칼레다를 축출한 경험이 있다. 또한 하시나는 2015년 1월 정부 출범 당시 반대시위를 막기 위해 칼레다를 몇주 동안 사무실에 감금한 바 있다. 오늘날까지도 양측은 집회마다 서로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도 방글라데시의 지방정치에서는 신세대 여성 정치인이 성장 중이다. 셀리나 하얏 아이비(Selina Hayat Ivy)는 소도시 나라양간즈(Narayanganj)의 시장직에 두번 연속 임명되었다. 2011년 그녀는 하시나가 지지한 AL 후보를 누르고, 2016년엔 칼레다가 지지한 BNP 후보를 누르고 각각 당선되었다. 정직하고 깨끗한 이미지에다 정치적인 주민 자율적인 도시 경영으로 그녀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AL파에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녀의 인기는 정치적 파벌을 떠나 매우 높다. 그녀의 인기는 기존 정치권에서 벗어난 깨끗한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두 여성 거인, 하시나와 칼레다는 여전히 정치지형을 흔들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원한다면 그들은 전세계가 바라볼 새로운 여성리더십의 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 서로에 대한 견제를 멈추고 협동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방글라데시의 정치지형에서 지나치게 큰 꿈일지도 모른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