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체제’ 정책대안은 ‘광장의 기법’으로···”군중은 스스로를 조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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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암흑으로 시작해 촛불로 마무리 됐다. 촛불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자 마중물이며 동시에 후대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까 고민하고 실천해내야 하는 책무가 됐다. <아시아엔>은 서울대 의대 신좌섭 교수가 1일 저녁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함께 모색해 본다. <편집자>

[아시아엔=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 31일 광화문 깃발아래에서 몇몇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다. 2016년 10차에 걸친 촛불시위는 파렴치한 정권과 부역자들에 대한 분노,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린 통한의 10년에 대한 한풀이였다. 누군가는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지게 되어있다”고 했지만, 5천만의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른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과연 새로운 체제가 가능할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내가 홀로 꿈을 꾸면 그저 꿈일 뿐이지만, 우리가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의 시작이 되고, 우리가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 천국(혹은 극락)을 지상에 건설하는 것도 가능하리라”는 속담을 기억했으면 한다.

temp_1483345626214-1059643409그러나 이 엄중한 역사적 전환점에 광장을 어떻게 조직화하고 군중의 에너지로부터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서서 ‘광장의 기법(Open Space Technology)’을 떠올렸다. 해리슨 오웬(Harrison Owen)이라는 조직전문가가 창안한 ‘광장의 기법’은 “군중은 스스로를 조직화한다”는 자기조직화(Self Organizing System)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기법을 광화문광장에 맞게 변형하면 아래(1~9)와 같은 틀이 만들어진다.

미리 요약하자면 ‘자원봉사자들이 특정주제 대한 점포를 열면 시민들은 돌아다니면서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고, 그 결과를 마지막에 전체가 공유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밑으로부터의 참여 에너지를 극대화하고 시민들의 주인의식을 고취하며, 미래사회의 변화의제를 도출하는데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1. 비슷한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10인 내외의 자원봉사자가 하나의 점포를 연다. 점포 앞에는 ‘약자를 위한 복지’, ‘양성평등’, ‘새로운 공화국의 시민 서약’,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제도’ 등 관심주제를 적어 점포의 간판으로 내건다. 점포에 갖추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제안을 기록하기 위한 커다란 종이와 보드마커 정도다. 무대는 준비하지 않는다.

2. 점포를 연 자원봉사자들은 점포를 방문한 손님들에게 주제에 관련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손님들의 답을 받아 기록하고 정리한다. 손님이 많아서 감당하기 어려우면 먼저 개인별로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하고 2인 혹은 4-5인 1조로 조별 토론을 거쳐 의견을 내게 한다. 5백명이 모였다고 해도 5인 1조로 의견을 내게 하면 1백명의 손님을 모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3. 광장에 대략 50-100개의 점포를 여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이 정도 숫자면 사람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생각들을 거의 다 담아낼 수 있다. 광장에 10만이 모인다면 산술적으로는 100개의 점포에 매순간 평균 1천명이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이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5백명 정도가 머무를 것이다. 경험으로 보면 10인이 5백명을 감당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개는 원으로 둥글게 모이도록 한다. 원은 완전한 평등, 대등한 참여, 모든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사람이 많으면 이중삼중으로 원을 만들면 된다.

4. 손님들은 이 점포, 저 점포를 돌아다니면서 자기 의견을 내놓는다. 이것을 ‘두발의 법칙’이라고 한다. 발이 두 개 있으므로 마음 가는대로 돌아다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양성평등’ 점포에서 자기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심심해지면 ‘교육제도’ 점포로 이동한다. 원한다면 하루에 50개의 점포를 들를 수도 있다.

5. 자원봉사자들은 누구를 초대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오는 사람이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손님이 오지 않는다고 초조해할 필요도 없다. 언제든 ‘시작하는 시간이 맞는 시간’이고 ‘끝나면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6. 내 아이디어가 다소 불완전하고 어설프더라도 망설일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와 결합되어 아주 혁신적인 생각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 “국민은 누구나 지혜를 갖고 있다, 가장 멋진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틀린 의견은 없다 다를 뿐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우리 모두의 의견은 존중될 것이다”와 같은 규칙을 손님들에게 알려주면 좋다.

7. 주제에 따라서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단계에 인터뷰 기법을 쓸 수도 있다. 한 점포에 모인 사람들에게 주제와 관련된 2-3개의 혁신적 질문이 적힌 종이를 나누어주고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더 역동적이 된다.

8. 약 3-4시간에 걸쳐서 의견들을 모은 다음에는 결과를 요약 정리하여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인원수를 감안하면 50-100개의 점포를 비슷한 것끼리 묶어 10-20개의 보고회를 조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종결과는 수합하여 언론사에 제공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겠다.

9. 개헌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지금 정부체제만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 사고체계, 사람들 간의 상호관계방식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 위 과정을 통해 모은 생각들은 이후 새로운 사회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뛰어난 사회와 감동적인 공연, 시민자유발언 모두 좋다. 그러나 광장을 어떻게 조직화하고 군중의 에너지로부터 무엇을 이끌어낼 것인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새해에는 ‘광장의 기법’을 도입하면 좋겠다.

그런데 이건 당신 전공영역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문을 갖는 분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집단 의사결정을 촉진하는 전문 퍼실리테이터로 10여년 일해 왔으니 전문분야와 다름없다. ‘광장의 기법’을 가르쳐준 박영도 선생이 문득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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