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하만 인수, 투자인가 자산 해외이전인가?
[아시아엔=심정택 경제평론가, <이건희傳> 저자]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14일 이사회에서 커넥티트카(Connected Car)와 오디오 분야 전문기업인 하만(Harman) 인수를 의결했다. 인수 총액은 80억달러(약 9조3800억원)다. 인수 발표 후 미국 언론은 반색했으나 유럽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커넥티드카는 정보통신기술과 자동차를 연결시킨 것으로 양방향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 등이 가능한 차량을 말한다.
커넥티드카 개발에 가장 먼저 뛰어든 업체는 애플(Apple)사로 애플사는 차량용 운영체제(OS) ‘카플레이(CarPlay)’를 개발하고 현대기아차, 볼보, 벤츠 등 자동차 업체들과 제휴하고 있다. 구글(Google)사 역시 커넥티드카 개발을 위한 연합을 결성하였다. 삼성전자가 인수를 진행한 시점은 피아트크라이슬러(FCA) 자회사인 마그네티 마렐리(Magneti Marelli) 인수 추진을 포기한 직후인 9월경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대형 M&A라는 점을 감안하면 협상 기간이나 방식이 졸속이며 발표 시점도 의혹이 일고 있다.
반도체 사업의 확장
마그네티 마렐리는 미래차인 자율주행차나 전기차 부문보다는 전통적 구동 방식의 차에 적용하는 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전장팀은 반도체 사업부내의 조직으로서, 글로벌 전자기업이, 한때 삼성그룹이 완성차 사업 때문에 참여했던 자동차부품 사업 재참여가 아닌, 반도체 사업 확장을 선택한 의미로도 읽힌다. 전체적으로는 사업의 방향성 측면에서는 “마그네티 마렐리보다는 하만을 인수하는 게 옳다”가 대체적인 시각이다.
구글이나 애플이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이들 글로벌 IT기업들은 자동차를 ‘궁극의 모바일 기기’(ultimate mobile device)로 보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사업의 참여가 아니라 기존 사업의 확장 개념으로 본다. 삼성 역시 마찬가지다. 90년대 닛산과의 기술제휴 방식의 완성차 조립사업의 경험이 있으나 전장 사업을 스마트폰 기기 등과 호환할 수 있는 커넥티드카의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 같다. 커넥티드카 시장의 성장은 차량용반도체 시장 성장을 동반한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스마트폰 셋트(조립)업체로서 상품 출고 기준으로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매출 및 영업이익률 측면에서는 애플에 절대적으로 뒤진다. 주식시장에서의 시가총액은 애플의 1/4 규모다. 후발업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사실상 스마트폰 셋트 기업의 지위를 내어주고 있다. 지난 여름 갤럭시노트7 폭발사건은 이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수년전부터 최대 이동통신기기 시장인 중국에서부터 화웨이, 샤오미 등에 시장을 내어주면서, 원래의 자리인 IT부품 전문기업으로 귀향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인수 발표 시기 ‘구설’
지난 8월 초 삼성과 피아트의 협상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하만에서 먼저 삼성전자에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9월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의 인수 협상은 두달 만에 이뤄진 것이다. 9월 중순만 해도 삼성전자는 속도를 높여 연말까지 협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계획보다 무려 한달여 빨리 타결되었다. 특히 인수 총액과 관련해서는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굳이 현지 독립경영 방식을 고수하면 51% 자본제휴 관계로 충분한데 지분 100%를 인수할 필요가 있었느냐, 인수 총액 또한 일반적인 예상보다 대략 30~40% 많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삼성이 직접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국내 대형 정치스캔들인 최순실게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은 이미 10월부터 최순실의 독일 현지 회사에 거액을 직접 송금한 것이 밝혀지면서 특검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11월초에는 삼성 미래전략실 핵심 경영진들이 검찰에 소환되기 시작했고, 일부는 출국금지조치까지 이루어졌다. 11월 14일은 이재용-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촛불 민심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하만 인수 발표 닷새 뒤인 11월 19일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00만 단위의 군중이 모인 대규모 촛불시위가 일어났으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을 주장하는 구호가 나왔다.
미국으로의 자산 이전 의혹11월 21일 하만의 디네시 팔리월 최고경영자도 참석한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고위 관계자는 하만이 먼저 인수 제안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사업 전반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인수 요청을 받은 삼성이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할 수 있었음에도 인수가격이 예상보다 높고, 삼성은 직전까지 마그네티와의 협상에 전력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하만에 대해서는 인수 검토된 것이 없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지고 있다. 어떤 상황에 쫓겨 협상이 종료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해외투자가 아니라 불안한 국내 정정을 피해 안전한 미국으로의 자산 이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2014년 갑자기 들어선 이재용 체제는 스마트폰 이후 신수종 사업 부재에 시달렸다. 오늘날의 M&A 러시 현상은 이재용 부회장의 조급증과, 재무통이기도 한 권오현 부회장이 삼성종합기술원장 시절, 당장 돈이 안되는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해 미래의 싹을 잘라먹은 댓가를 치루는 것으로도 보인다.
커넥티드카 시장은 애플과 구글의 자동차 운영시스템 같은 게 산업의 중심을 이룬다. 인포테인먼트 또한 향후 만개할 자율주행차 시대에나 실제적인 산업으로 떠오른다. 차량 인포테인먼트는 운전자에 길 안내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포메이션’과 오락적 요소를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통합한 시스템을 일컫는다. 자동차오디오도 엔진과 진동 등 소음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가졌을 때 제 품질을 평가받을 수 있다. JBL이나 뱅&올룹슨(카오디오)의 브랜드 정도가 제대로 평가받아도 80억달러나 줄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자동차든 자동차 부품이든, 자동차 전장이든 어느 사업 영역에 구겨 넣든 하만이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삼성전자나 삼성그룹 어느 사업 영역과 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삼성 경영진의 머리 속에 있는 커넥티드카와 인포테인먼트는 실제 시장과는 상관없는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다. 오디오에 관심 가진 이재용 부회장의 취미 차원에서의 M&A가 아니기를 바란다. 특히 염려가 되는 것은, 이재용이 무엇을 하든 ‘위대한 결단’이 되는 현실이다. 삼성은 갤럭시노트7 완제품 교환조치도 이재용의 결단이라고 치켜세우지 않았는가.
삼성전자는 2013년 분기 영업이익 7조원이라는 정점에 올라서면서도 불안에 휩싸였다. 스마트폰 사업이 하강할 때 이를 대체할 신수종 사업 부재 때문이었다. 전장팀을 꾸린 뒤 불과 수개월 만에 블룸버그는 피아트그룹의 자동차부품 사업부문인 마그네티 마렐리를 인수한다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박종환 전장사업팀장(부사장)은 급히 서둘렀다. 2016년 연말까지는 뭔가 한 가지는 성과를 내야 한다면서 지인들에게 “숨 좀 쉬자!”를 입버룻처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