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존재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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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독일통일을 단순히 흡수통일이라고 보는 것은 큰 잘못이다. 결과로서는 흡수통일이지만 과정은 분명히 합의통일이다. 남북한의 통일도 이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을 혼동, 오해하여서는 안 된다.

통일준비는 남북이 기능적으로 수렴(收斂)하는 과정이다. 독일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 우리는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정립부터 시작된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접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문제는 대북접촉을 이루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너무 컸다는 점이다. 북한에 흘러들어간 달러는 핵과 미사일이 되어 돌아왔고, 내부적으로는 종북세력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렇듯 잘못된 남북접촉 행태를 교정하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통일은 다음 정부, 또는 그 다음이나 되어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남북의 진정한 화해협력은 북한의 지도자가 고르바초프 정도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소련이 스탈린에서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에는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를 거쳤다. 김정은은 아직 스탈린 단계다. 급변사태가 이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으나, 이를 무작정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독일의 통일은 레이건 대통령이 냉전에 승리하여 소련이 무너지면서 동독에 대한 장악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독일민족의 통일에 대한 욕구가 아무리 강렬하고, 통일준비가 아무리 철저하였더라도 소련이 독일을 장악하고 있는 한, 통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한반도에는 냉전 당시의 소련군과 같은 점령군 성격의 외국군이 진주해 있지 않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전쟁억제를 위해 주둔하는 동맹군이다. 그러나 북한 급변사태를 맞았을 때 중국군이 흘러들어올 우려가 없지 않으며, 대량살상무기 처리를 위해 중국과 미국이 다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여하히 지혜롭게 처리할 것이냐가 통일과정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다.

남북통합과정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동서독의 통일초기, 진정한 통합에는 한 세대가 흐른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것은 이미 동서독의 기능적 수렴이 많이 진척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통합과정은 동독 출신의 메르켈 총리의 등장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통합과정은 이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남북한의 차이는 동서독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북한은 현재 마치 5·16이 일어날 당시의 남한과 같은 절망과 기아선상에 허덕이고 있다. 지금 통일준비를 한다는 것은 통일 이후에 해야 할 일을 미리 해둔다는 것이다. 철도, 도로, 항만, 통신 등 인프라의 건설, 삼림녹화 그리고 주민에 대한 영양공급 등이 그것이다. 북한과 통일을 협의할 수 있는 상대-동독의 모드오르 수상과 같은-를 발견하고 길러 두어야 한다.

미국 일본에서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유용한 접촉선(venue of conduit)으로 이용해야 한다. 국정원은 이런 고도의 국가전략을 수행·하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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