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 어제와 오늘③] 한국 개신교 5만개 이상···무속적 경향도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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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한국에서 특히 개신교의 신앙 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최대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선 주말이면 1만명 가량이 모이는 예배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7부에 걸쳐 이어진다.

이렇게 한번의 예배에 3천명 이상이 모이고, 주말이면 이런 예배가 5~7차 이어지는 교회가 서울에만 30개가 넘는다. 이런 대형교회 말고도 한국은 개신교회가 5만개가 넘어 교회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골목마다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또 선교 열기가 유난히 뜨거워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해외 선교사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에 와서 완결판이 되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아예 끝장을 본다는 것이다. 깊이 들어가기도 하고,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위기 때면 모든 종교가 민족의 이름으로 하나로 뭉친다. 한국종교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종교들이 주류의 자리를 뺏고 뺏았기는 경쟁관계이면서도 민족적 위기엔 동포애로 하나로 뭉친다는 점이다. 일제가 침략해와 한반도를 유린한 임진왜란(1592~1598)때는 피난에 급급한 조정을 대신해 유가의 선비들은 의병을, 산사의 승려들은 승병을 이끌고 힘을 합쳐 왜병과 싸웠다.

비폭력적이기로 유명한 종교인 불교가 나라와 동포를 위해 전쟁에 나선 것은 세계불교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민족을 살리기 위해 종교가 힘을 합친 이런 전통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했던 일제시대(1910~1948)와 같은 민족적 위기상황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1919년 3월1일부터 전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비폭력적으로 “대한 독립!”을 외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2천만 국민의 대다수가 참여한 비폭력 만세운동은 그해 2개월여 뒤 중국 베이징의 학생들이 일으킨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이자 신민주주의 운동의 출발점이 된 5·4운동과 같은 해 인도 간디의 비폭력운동 선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만세운동을 이끈 것은 정치지도자나 군인들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었다. 3·1만세운동을 위해 대한독립선언을 한 민족대표 33인은 19세기 한국에서 태어나 들불처럼 일었났던 천도교 교주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와 개신교, 불교계 대표들이다. 이들은 나라를 잃고 노예상태에 빠진 동포들을 구하기 위해 종교를 넘어 하나가 되었고,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은 일제 서대문형무소의 한 감방에 갇혔다. 이들은 종교는 달랐지만 ‘민족동포’로서 한 형제였다.

한국 땅엔 어떤 종교의 씨앗을 심어도, 쉽게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한국 땅엔 불교가 들어오면 불교, 유교가 들어오면 유교, 기독교가 들어오면 기독교, 최근 들어와서는 이슬람까지 정착하고 있다. 한국이 아닌 국가들의 대부분이 강력한 나라의 침략에 의해 강대국의 종교를 수용하곤 했지만 한국에선 국가 권력자나 백성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수용된 측면이 강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남다르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 탐구의 열정이 강하다.

한국종교는 하나같이 무속적인 경향이 있다. 절에도 칠성각처럼 고대의 무교 풍습이 있다. 교회에서도 오순절파 등 마치 굿을 하듯이 울고 웃고 심령적으로 마음의 한을 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속적인 것과 종교가 결합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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