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시시콜콜 비박·친박’ 벗고 ‘뇌전증 운전’ 같은 민생 보도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지난 31일 부산 해운대에서 ‘발작 운전’으로 4명이 죽고 14명이 다친 사건이 일어났다. 사고를 낸 김씨는 매일 뇌전증 약을 복용해왔다. 그런데 김씨가 운전면허를 갱신하면서 적성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치매·정신질환·뇌전증’ 등 10여 검사항목의 ‘진료받은 적이 있다/없다’로 나뉘어 있는 부분에 피검자 본인이 표시만 하면 되는 제도적 허점 때문이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뇌전증 중증환자 1641명 중 6명만 ‘운전 불합격’이라고 한다. 충격적이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앞에 있던 차량들을 들이받아 대형사고를 낸 고속버스를 보자. 운전자는 누가 보아도 비몽사몽 졸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음주운전 3번으로 삼진 아웃 받아 운전면허가 취소된 자가 다시 운전면허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규정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국회에서 법률로 제정된 것은 아니고 정부의 행정명령이나 시·도에서 제정한 조례나 규칙일 것이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던 꽃다운 청년 셋이 죽고 수십명이 부상당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죽음인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먼저 고속버스 회사가 이런 사람을 고용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고 이후 정부는 대책회의를 열고 운전자는 네 시간 운전 후 반드시 30분 휴식하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이것이 개선책인가? 삼진 아웃 된 자가 다시 운전대를 잡지 못하도록 해당 명령이나 조례를 고치는 것이 우선 아닌가? 엄밀히 이야기하면 정부의 직무유기에 의한 살인방조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

영국에서 생활한 사람 중 영국에서 운전면허를 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 아마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영국 운전면허가 없더라도 한국면허를 국제면허로 전환, 운전이 가능하니 생활하는데 별로 불편이 없다. 운전면허를 따는데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수십 번 걸렸다는 사람도 있다. 영국의 60대 노인이 운전면허를 딴 후 죽기 전에 평생소원을 풀었다고 할 정도다. 영국에서 자동차가 발명되었는데 크러치가 자동이 아니라 수동일 때 운전하던 방식을 고집한다. 영국에서 운전은 인격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대부분은 영국처럼 운전면허가 엄격하였더라면 일어날 수가 없는 ‘인재’와 다름없다. 인구가 줄어 정부가 출생률을 높이는데 진력한다면서 무참한 사고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잘 안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사람들이 잘 안다. 대대장 시절 대대 내의 화포와 차량을 분해해 본 장군이 있었다. 차량은 수송부 선임하사가 전문가다. 그렇다고 전장에서 차량사고가 터졌는데 선임하사를 기다릴 것인가? 독일군은 사관생도때부터 대대급의 모든 편제장비를 운전하고 화기를 분해·결합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기초에 강한 독일군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통일도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화급한 문제를 정치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언론에서라도 다루어야 한다. 친박·비박 논쟁 보도 대신 ‘뇌전증 문제’ 같은 민생관련 사항을 언론에서 시급하게 다루어야 한다. 거대담론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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