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긴장완화 해법③] 대결시대 ‘페리 프로세스’서 ‘코리아 프로세스’로 전환을
[아시아엔=이부영 전 국회의원, 2015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조직위원장] 지난 4월 25일 서울에서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반도포럼(이사장 백영철)이 개최됐다. 거기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지금까지 선 비핵화를 전제한 북핵 폐기 노력은 계속 실패했으며 지난 20여년 동안 북핵은 고도화됐다. 제재에 의존한 강경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지적이었다. 한국과 미국이 ‘선핵폐기론’으로부터 ‘선고도화방지 후 폐기’로 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북핵 능력은 더욱 고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북핵의 고도화를 저지하는 현실적 대안으로 비핵화보다는 핵동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됐다.
다음으로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치열한 논쟁을 일으켰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는 “평화체제 논의를 배제한 비핵화의 방법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참가자들은 한국이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돌파할 의지가 있는지, 한국의 동력부재를 우려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페리 프로세스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코리아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의미심장한 결론을 내렸다..
필자는 이제 코리아 프로세스로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5월 6일 북한노동당 제7차 당대회가 열렸고 5월 4일에는 제임스 클래퍼 미 정보국장이 한국을 다녀갔다. 지난 4월에는 존 케리 미국무장관, 이어서 대니얼 러셀 동아태차관보가 북한과의 평화협정 협상에 조건이 충족되면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왕이 외상과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상이 공동성명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동시협상을 촉구했다.
북한의 핵동결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한미군사훈련의 중지 혹은 봉쇄와 제재의 해제,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평화협정의 협상일 경우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반발의 정도를 탐색하는데 클래퍼 정보국장의 이번 방한의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모든 논의와 조율의 결과를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통보받았을 것이다. 6자회담의 당사국이자 한국전쟁의 4대 교전당사국인 한국이 논의와 조율의 결과물을 미국으로부터 통보받는 처지인?셈이다. 한국은 대립과 위기의 강경국면을 주도하도록 역할이 주어졌다가 대화-협상 국면으로 전환할 경우 ‘나 홀로 강경’으로 남아있는?처지가 반복되어 왔다. 대화-협상 국면이 한국의 국익에 불리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단-대결의 단역 배우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을 대타협하는 국면이 올 경우, 한반도에 화해와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주역(올 라운드 플레이어)이 될 각오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대결시대의 해법으로 페리 프로세스가 있었다면 화해-공존 시대의 해법으로 새로운 코리아 프로세스가?불가피하다. 필자가 강조하려는 코리아 프로세스의 핵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비핵화를 성취해가되 평화협정에 대해 공포감이나 거부감을 갖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의 7차노동당대회 이후 북미대화, 6자회담이 복원될 경우, 한국은 2005년 9.19성명 도출 당시 북한과 미중일러를 설득했던 적극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의 진전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명분을 약화시킬 것이며 변화를 가져올 주한미군의 위상도 우리의 부담을 크게 줄일 것이다. 한국이 취할 구체적 코리아 프로세스의 내용을 필자 나름대로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단기적으로는 1)남북대화를 복원한다 2)개성공단의 재가동과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신속히 성사시킨다 3)남북이산가족의 상봉 및 서신교환을 재개, 확대한다 4)6.15, 10.4 남북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도록 한다 5)이미 합의한 남북철도와 도로 연결사업을 신속히 이행한다 등이다.
장기적으로는 1)서울과 평양에 남북대표부를 설치한다?2)미국과 일본의 대북관계정상화를?적극 찬성한다?3)북핵 폐기 및 평화협정과 연계하여 한미동맹을 재조정한다 4)북한-러시아 당국과 시베리아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의 연결사업을 논의하는 한편 사할린 가스파이프라인의 한국연결을 논의한다 5)중국-러시아의 산둥 가스파이프라인의 한국연결을 논의한다는 등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대북, 외교안보정책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 나름대로 소략하게 정리한?코리아 프로세스 정책은?북한에게 체제안전보장과 경제협력의 진정성을 이해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대결로부터 호혜-공존과 공동번영의 시대로 나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국가적 개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아울러 북한이 포위된 농성국가로부터 동아시아의 개방된 국가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전환은 북한 자신뿐 아니라 한국, 나아가 동아시아와 전세계에도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코리아 프로세스는 한계와 위기에 부닥친 한국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고 일본의 국가동력을 부분적으로 다시 평화쪽으로 돌려세우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코리아 프로세스가 한반도를 갈등과 대결의 중심으로부터 동아시아 평화번영의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을 주도해갈 한국인들 속에서?이 과제에 대한 이해와 국민적 합의가 요구된다.
2015년 8월 동아시아국제평화회의를 마친 뒤,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본 규슈지방의 지진사태는 많은 동아시아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의기구인 6자회담은 8년째 거의 가동정지 상태다. 북핵은 고도화를 거듭하여 이제는 전략무기화 단계에 들어섰다. 갈등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도 지난 8년처럼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북핵의 전략무기화에 이어 일본 한국 대만으로의 핵도미노가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동아시아 위기에 북핵을 해결해야 할 6자회담은 시계제로 상태다.
6자회담은 동아시아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지역국가협력기구로 탄생하기를 기다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일본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운동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운동 △동아시아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를 기억하는 운동 △동아시아 원자력발전?핵무기 반대운동 등에 종사하는 평화시민운동가, 학자, 정치인들이 즉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년 동안 논의해왔고 2015년 8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서울 국제평화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제안한 ‘동아시아평화회의’가 2016년 하반기에는 발족하기를 기대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