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의 웰빙100세] 입춘날 입맛 돋구는덴 ‘무순 생채’가 제격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옛날 대궐에서는 입춘이 되면 내전(內殿) 기둥과 난관에 문신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 우수한 것을 뽑아 연잎과 연꽃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으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고 하였다. 일반 가정에서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cm 내외, 세로 70cm 내외의 한지를 두 장 마련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입춘에 백관이 대전(大殿)에 가서 입춘절을 축하하면 임금이 신하들에게 춘번자(春幡子)를 주고, 이날 하루 관리들에게는 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궁중의 역귀를 쫒는 행사인 대나의(大儺儀) 때 토우(土牛)를 만들어 문 밖에 내놓아 겨울의 추운 기운을 보냈다고 한다.

함경도에서는 입춘날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으로부터 민가의 마을까지 끌고 나와 돌아다니는 의례를 행하였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굿놀이를 행하였다. <열양세시기>(?陽歲時記)에는 보리뿌리점(麥根占)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입춘날 보리뿌리를 캐어서 그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쳤다. 즉, 보리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입춘절식(立春節食)으로 궁중에서는 다섯 가지의 자극성이 있는 나물인 오신채(五辛菜)로 만든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올렸다. 입춘에 먹는 오신반은 비타민 섭취를 위시하여 겨우내 추위에 혹사당했던 간의 회복을 돕는 봄철 보양식이다. 오신반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요리로 추운 겨울철을 지내는 동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를 맛보게 하는 음식이다.

음식이 맛있거나 신나는 일을 빗댈 때 입춘 시식(時食)으로 먹던 무순 생채를 비유하여 “입춘날 무순(筍) 생채(生菜)냐”라는 말이 있다. 입춘에 먹는 절식은 겨우내 움츠렸던 입맛에 생동감을 주는 활력소 역할을 한다. 민가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서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었다. ‘춘반(春盤)의 세생채(細生菜)’라 하여 파, 겨자, 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간에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다.

입춘에 불어오는 동풍이 추위를 녹이면 땅속에서는 파, 마늘, 자총이, 달래, 부추, 미나리 등 새순이 돋아난다. 봄나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양념하여 무쳐 먹거나, 밥과 함께 비빔밥을 해 먹어도 잘 어울린다. 미나리, 냉이, 움파, 당귀, 봄동나물 등은 봄철에 잘 어울리는 나물이다.

옛날 냉장고가 없었을 시절에는 땅에 큼직한 구덩이를 파고 배추, 무, 파 등의 채소를 저장해 두곤 했다. 움파는 겨울에 이 움 속에서 자란 파로서 파가 움 속에 있는 동안 빛깔이 연노랑으로 바뀐다. 파를 베어낸 줄기에서 다시 줄기가 나온 파를 움파라고도 한다. 12월에서 3월까지 추운 겨울에 움에서 노란 싹이 난 것이 가장 맛이 좋다. 맛이 다디단 움파와 연한 쇠고기를 꼬치에 번갈아 꿰어 산적으로 만든 움파산적도 봄철 미각을 돋우는 데 좋다.

중국의 옛 풍습에 남편이 전쟁터에 나갈 때 부인이 남편의 품속에 당귀(當歸)를 넣어주었다고 한다. “마땅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진 ‘당귀’는 전쟁터에서 기력이 다했을 때 먹으면 다시 기운이 회복되어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입춘 때 경기도 지방에서 당귀의 싹인 ‘신감채(辛甘菜, 승검초)’를 임금께 진상했다고 한다. 승검초는 가루를 내어 주로 떡이나 음료에 넣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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