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르완다 박용민 대사의 예술감평] 마틴 스콜세지와 우디 앨런의 ‘뉴욕영화들’

[아시아엔=박용민 주 르완다 대사]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미국 영화의 절반 정도는 뉴욕이 배경이다. 실제로도 그럴 것 같은 느낌이라서, 한가하다면 정말로 헤아려 보기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특히 맨해튼의 모든 구석구석은 영화 속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미국 영화를 상징하는 기호(icon)는 할리우드지만, 정작 영화의 도시를 꼽자면 단연 뉴욕이 아닐까.

당신이 보석상 티파니 앞에서 아침식사로 샌드위치를 먹는 아가씨를 지나쳐 웨스트사이드로 간다 치자. 거기서 로버트 드니로를 닮은 택시 드라이버에게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타운이 있던 위치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그는 “지금 나한테 말하는 거냐”며 시비를 걸어올 지도 모른다. 죽지도 않는 브루스 윌리스가 그를 지긋지긋해 하는 독일인 악당들을 뒤쫓던 센트럴 파크에는 수많은 인파가 조깅을 즐긴다. 그중 누군가는 마라톤맨처럼 절박한 사연을 안고 뛰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고, 비둘기를 바라보는 아이는 가족 여행에서 떨어져 나홀로 집에 남은 처지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운이 좋다면 자유의 여신상 근처에서 데릴 한나 비슷한 인어를 만난다거나 34번가 백화점에서 기적을 목격할 수도 있고, 운이 아주 나쁘다면 크라이슬러 빌딩 위에 떠 있는 적대적인 외계의 비행접시라든지 고층건물을 기어오르는 초대형 유인원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월스트리트에서 마주쳤던 정장 입은 여성은 스탠튼 아일랜드에서 매일 아침 배를 타고 출근하는 ‘워킹걸’이었을지도 모르고, 저녁식사를 하러 들른 리틀 이탈리의 식당에서는 달빛에 취해 약혼자의 동생과 사랑에 빠진 노처녀가 당신 옆자리에 앉아 있을 지도 모른다.

뉴욕은 외계의 침략자나 괴물들이 유난히 자주 찾아오는 곳이고, 수퍼히어로 인구도 과밀상태다. 스파이더맨이 날아다니는 고층건물들의 지하에는 헬보이가 있고, 근교에는 엑스멘이 떼지어 숨어 산다. 배트맨의 무대인 고담시나 슈퍼맨의 메트로폴리스도 뉴욕을 모델로 삼고 있다. 악당이나 히어로나 한결같이 기를 쓰고 뉴욕에서 활동하려는 것은, “캔자스시티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거나 “오클라호마시티의 수호자”라고 해서는 폼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New York, New York’의 가사는 뉴욕에서 성공하고 싶은 신인가수의 심정을 노래한다. “여기서 성공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성공할 거야(If I can make it there, I’ll make it anywhere)!” 시골에서 올라온 신인가수건 외계에서 쳐들어온 악당이건 뉴욕을 바라보는 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그래서 뉴욕은 바쁘다. “잠들지 않는 도시(the city that never sleeps)”가 될 만큼.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나는 뉴욕에서 근무했다. 당시 뉴욕은 변화하고 있었다. 살면서 겪은 뉴욕은 그때까지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1995년 첫 출장으로 뉴욕에 왔을 때만 해도, 타임 스퀘어는 XXX 자를 큼지막하게 간판에 내건 성인용 오락장소들로 그득했었고, 밤거리에서는 ‘가장 오래된 직업(the oldest profession)’이라는 별명을 가진 매춘부들이 숱하게 배회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그런 옷차림이 ‘가장 새로운 패션(the latest fashion)’이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80년대 말까지, 뉴욕의 지하철은 범죄영화의 단골 무대였다. 열차는 낙서판이었고, 열차의 유리창들은 깨져 있었으며, 찾는 이 적은 승강장은 위험한 장소였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뉴욕을 찾는 여행객들은 밤길을 배회하면 권총강도를 만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불길한 조언이라든지, 길에서 ‘머깅(mugging)’을 당했다는 불운한 체험담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뉴욕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그런 이야기를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Mean Streets>나 <Taxi Driver>의 뉴욕으로부터, <Sex and the City>의 뉴욕으로의 변화였다.

루돌프 줄리아니는 위대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7년간 시장직을 역임하는 동안, 그는 뉴욕의 얼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물론 시장 혼자 이런 변화를 이루어낸 것은 아니다. 더 큰 해답은 90년대말의 경제호황과 부동산 버블이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켜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대거 재개발 되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뉴욕이 영화의 배경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그곳이 미국의 다른 어느 곳과도 다른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미국적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가 된 셈이다. 이 도시에 일찌감치 독특한 분위기의 스카이라인이 생겨난 건 맨해튼의 지반이 변성암의 일종인 운모편암이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1920~30년대의 건축공법으로도 다닥다닥 붙어선 마천루들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숲이 밤의 정령을 부르듯, 맨해튼의 잠들지 않는 빌딩 숲은 전세계로부터 가난과 핍박을 피해 오는 이주민과, 자기만의 왕국을 꿈꾸는 갱단과,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연주자와, 히트를 꿈꾸는 프로듀서와, 유명해지고 싶은 연예인지망생과, 대박을 터뜨리고 싶은 금융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오늘의 도시를 이루었다.

욕망이 장해물을 만나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탄생한다. 도시가 생겨난 이래 줄곧 큰 욕망이 만만찮은 도전과 뒤섞여 꿈틀대 온 도시, 뉴욕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이다. 프란시스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The Godfather 2>나 쥬제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 감독의 <The Legend of 1900>은 초창기 이민자들이 선상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며 느꼈을 감격과 두려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멸종되어가는 희귀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맨해튼은 보물섬과 같은 곳이라고 한다. 모국의 정치적 동란을 피해서 이곳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모국어를 잘 간직하고 있고, 심지어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수가 본국보다 맨해튼에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잊혀진 모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말 못할 사연은 또 얼마나 많겠나.

뉴욕을 표현하는 데 평생 집착한 감독이 둘 있다. 이탈리아계인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와 유태인인 우디 앨런(Woody Allen)이다. 이 둘은 1989년 <New York Stories>라는 단편을 함께 만들기도 했었다. 스콜세지의 작품에서 뉴욕이라는 도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고 무겁지만, 그가 그려 온 어둡고 거친 뉴욕의 뒷골목은 빠른 속도로 잊혀지는 과거의 모습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조직이 아닌 맨해튼 시민의 삶에 눈높이를 맞춘 우디 앨런이야말로 뉴욕을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 속에서 맨해튼이라는 장소는 ‘로케이션’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대체할 수 없는 ‘캐스팅’에 해당한다.

우디 앨런은 여러 번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지만 유별난 고집을 부려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시상식장에 나타난 것은 9.11 사건 직후인 2002년이었다. 거기서 그는 “나는 아무 상도 주거나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여기 온 건 단지 뉴욕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섭니다”라고 말하고, 기립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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