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르완다 박용민 대사의 예술감평] ‘레버넌트’의 역설, 삶을 부지한다는 것이란?
[박용민=주 르완다 대사]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lez I??rritu)는 <21그램>(21 grams) <바벨>(Babel) <버드맨>(Birdman) 같은 수작들을 통해 개성이 또렷한 작가주의적 스타일을 다듬어 온 1963년생 멕시코 태생의 영화감독이다. 2006년 <바벨>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래 주목을 받아 왔는데, 올해는 한 번 더 일을 낼 듯하다.
<레버넌트>(The Revenant)는 아카데미상 12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2016년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로 기록되었다. 막상 작품상과 감독상은 다른 후보작들과 비교해 보아야겠지만, 일일이 비교해 보지 않더라도 최소한 남우주연상과 촬영상만큼은 이 영화가 못 받아서는 안 될 것처럼 보인다.
“이래도 오스카 안줄래?”
특히 열아홉살 때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로 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래 번번이 아카데미상복은 없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주연상 안 줄래?”라는 식의 열연을 펼치고 있어서, 이번에도 안 줬다간 다음엔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아까운 사람 하나 잡게 될 거 같은 생각마저 든다.(이게 무슨 말인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해하실 것이다.)
아직 상영되고 있는 영화라서 스포일러는 삼가야겠지만 몇가지 느낌은 기록해 두어도 좋겠다. 이 영화를 보자마자 떠올랐던 다른 한 편의 영화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2007년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였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만 하는 ‘모진 목숨’이라는 주제 의식, 살아남긴 하지만 자식을 통해 대를 잇지 못하는 아비의 고통에 관한 묘사, 피 튀기는 거친 액션(특히 부상으로 고생하는 주인공), 19세기 미국 서부라는 지역적, 시대적 배경, 현악기를 주로 사용하는 배경음악, 누군가의 죽음 직후에 덜커덕 끝나버리는 영화의 종지 방식 등 몇가지 요소가 묘한 기시감을 준 까닭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땀이 뻘뻘 나는 뉴멕시코 사막의 이야기인데 반해 <레버넌트>는 관객들의 손마저 곱아버릴 것 같은 로키 산맥 추위 속의 이야기다. 더위는 짜증스러움을, 추위는 통증을 관객에게 전달해주기 유리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강렬한 생존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사람은 희생시킬 수 있는 악당을 연기한다면,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는 억울해서 그냥은 못 죽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음이 무섭지도 않은 용맹한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두 영화는 비슷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겠다.
디카프리오는 <에비에이터>(The Aviator, 2004),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2006),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3)으로 세 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매번 경쟁자들이 너무 쟁쟁해서 고배를 마셨다. 그의 스타 파워나 연기력에 비해 너무 불운했던 셈이다.
이번에 그가 주연을 맡아 연기한 장면들은, 배우가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연예인 지망생들로 하여금 장래 희망을 심각하게 다시 고민해보도록 만들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고생스러워 보였다. 오죽하면 제목이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뜻하는 <레버넌트>겠나. 말그대로 저승의 문턱을 넘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극한의 체험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감상은 대체로 “강렬하다”(intense)는 느낌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 느낌의 팔할은 주연배우인 디카프리오가 영화를 짊어지고 끝까지 씩씩하게 가준 덕분이다.
한 공무원의 손에서 탄생한 거짓말 같은 실화
놀랍게도, 이 거짓말 같은 줄거리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19세기초 미주리강 상류지역에서 생고생을 경험한 실존인물 휴 글래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사람은 마이클 펑크(Michael Punke)라는 미국의 현직 공무원이다. 펑크 씨는 미국 무역대표부의 부대표 겸 세계무역기구(WTO) 주재 미국 대사로 근무하고 있는 고위 공무원이다.
그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로펌에 재직하고 있던 1997년이었다는데, 소설을 쓰려고 4년에 걸쳐 날마다 새벽 5시에 사무실로 나갔다고 하니 보통 열정이 아니다. 직위를 남용할 수 있는 부업을 금지하는 공무원 윤리규정 때문에 영화 홍보와 관련된 인터뷰는 하지 않고 있어서 그의 소회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무척 뿌듯하고 흐뭇할 걸로 본다. 이 소설을 마이크 스미스와 알레한드로 이냐리투(감독) 두 사람이 시나리오로 만들었다.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 때 생길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물론 소설이나 영화가 실화를 묘하게 왜곡하고, 곡해된 인식을 널리 전파할 수 있다는 정치적인 지점에 있겠다. 이에 더해 이야기 자체에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실화가 너무 놀랍고 기이한 나머지 순수한 픽션보다 개연성이나 핍진성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소설가의 철칙은?설령 공상과학소설이나 판타지 작가라 할지라도- 독자들이 “그럴 법 하다”라고 여길 수 있는 핍진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는 그런 법칙 따위가 없어서, 전혀 일어날 법 하지 않은 일들도 마구 일어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간혹 “소설 쓰고 있네”라는 지청구를 주기도 하는데, 실은 잘 쓰여진 소설보다는 현실 쪽이 훨씬 더 거짓말 같은 경우가 많다.
<레버넌트>의 줄거리가 그런 이야기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뻥치시네”라고 하는 대신 “강렬하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이 영화가 솜씨 좋게 잘 만들어진 덕분일 것이다. 특히 주연과 조연을 맡은 레오나도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의 흡인력 있는 연기가 돋보였고, 설득력 있는 촬영(cinematography)과 특수효과(visual effects)가 영화의 수준을 높여 주었다. 이냐리투 감독은 전작 <버드맨>에서처럼, 어디서부터가 특수효과인지 분명치 않은, 시치미를 뚝 떼는 방식으로 놀라운 몇몇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주로 자연광만을 사용해 대자연의 거친 결을 잘 표현해낸 이 영화의 촬영기법은 매우 인상적이다. 눈밭을 적신 피의 붉은 색만 아니었다면 마치 흑백영화를 본 것처럼 기억에 남을 것만 같은 독특한 색조를 담아냈다. 카메라 렌즈에 피가 튀거나 등장인물의 입김이 서려 뿌옇게 되는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최근 들어 생겨난 기법인데, 고전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기교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즉,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영화임”을 자꾸 일깨워 주는) 소격효과에 해당할 터다.
그러나 비디오 화면을 통해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한 영상시대의 관객들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몰입을 훼방하기보다는 화면 속 세상과의 소통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라스트 신에서 카메라 렌즈 너머의 관객을 응시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보면서, 아마도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유난히 팍팍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보면,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 원래 그리 녹록치도, 가볍게 볼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묵직하게 느끼도록 도와줄 법한 영화다. 앞으로 이 영화를 다시 찾아보고 싶어지는 나날들이 많지는 않으면 좋겠다.
What a critical accla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