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백령도 해병대 구타사건 왜 끊이지 않나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해병대 최전방부대인 백령도에서 근무하는 부사관들이 회식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 등으로 후임을 집단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해병대는 “6여단 헌병대가 폭행 및 강요 혐의로 A(22) 하사 등 부사관 2명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라며 “입건된 A하사 등 2명은 지난해 11월 26일 오후 10시 백령도의 한 주유소 인근에서 후임 B(20) 하사를 수차례 폭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돈을 주지 않고 후임에게 담배를 사오게 하거나, 초과근무를 대신 서게 하는 등 가혹 행위를 한 혐의도 받고 있다.

A 하사 등은 사건 당일 1차 회식 때 중대장이 건배 제의를 하는데 B 하사가 졸고 있었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B 하사는 지난해 11월초 백령도 해병부대에 전입해, 전입 3주만에 선임 간부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셈이다.

해당부대 헌병대는 지난해 12월 6일 피해자인 B 하사의 면담 요청을 받은 뒤 수사에 착수했다. 헌병대는 면담 과정에서 12월 5일 다른 선임 간부 C(23) 하사가 잠든 B 하사에게 휴대전화를 던진 사실을 확인하고 C 하사도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했다.

해병대는 사건발생후 1달이 지난 뒤 이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A 하사 폭행 사건 가해자들은 법적 처벌하고 지휘 관련자도 징계를 검토 중”이라며 “병영문화 혁신을 저해하는 어떤 행위도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철저히 밝혀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인천 지역의 해병대 부대에서 총기 난사사건 이후 해병대는 악기발휘(선임들이 후임들에게 인내심과 끈기(악)을 길러준다는 명분으로 가혹행위), 기수열외(해병대의 왕따 문화) 등의 악습을 타파하기 위해 구타를 한 선임들에 대해선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명찰 회수, 부대 전출 등의 정책을 펴 왔다. 지난해 7월엔 ‘해병은 해병을 때리지 않는다’와 같은 조항을 포함한 5대 해병 생활신조를 제정하는 등 재발방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이상 <중앙일보> 1월3일치 일부 인용)

폐쇄된 공간에서 서열에 따라 움직이는 병영문화 특성상 군부대 안 구타근절 문제는 창군 이래 군이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필자 역시 30년이 훨씬 지난 얘기이긴 하나 군 복무 중 구타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번 백령도 하사관 구타사고를 접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1993년 여름 백령도 6여단에서 일어난 해병대 영관장교 구타사건이다. 당시 필자는 국방부 출입기자로 군 관련 취재를 전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페이저(일명 삐삐)가 울렸다.(당시 휴대전화는 극히 제한된 직책의 기자에게만 배당됐다)

“이 기자님, 백령도에서 구타사건이 났습니다. 소령이 대대장 (중령) 머리를 맥주병으로 찍었습니다. 취재해 보시죠.” 자세히 알아보려는 순간 전화는 뚝 끊겼다. 삐삐에 찍힌 번호로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됐다. 제보를 토대로 군 수사기관과 현지 정보통 등에게 전화를 했다. 사건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개요는 이랬다.

대대장(중령)과 참모(소령)이 회식을 하며 부대 일로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던 중 상관이 하급자에게 손찌검과 함께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참다 못한 소령은 앞에 있던 맥주병을 들어 대대장의 머리를 내리쳤다. 피가 줄줄 흐르고 부대병원으로 응급처치를 한 후 이튿날 정상적으로 부대에 복귀했다.

취재 결과 상황을 종합해보니 명백한 하극상 사건이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구타한 사건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술 자리란 점에서 경감될 수는 있지만, 개인사를 갖고 다툰 게 아니라 부대운영에 대한 언쟁 끝에 벌어진 점에서 하극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지 취재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단장(해병대 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이었다. 2~3분 지나 여단장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는 여단장에게 취재해 알고 있는 사항을 말하고 사실여부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맞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정말 미안합니다. 제발 기사는 쓰지 말아주십시오.”

당시는 김영삼 정부 초기로 군부대에서 작은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지휘관이 문책되던 시절이었다.

“확인해줘 고맙습니다. 기사를 쓰는 게 우리 기자들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다만 다음 세가지 조건을 꼭 지켜주십시오.”

“무엇입니까?”

“첫째, 두 사람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십시오. 하극상을 저지를 부하와, 부하를 먼저 폭행한 상사에 대해 마땅한 처벌을 해주시고, 둘째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해서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을 다른 기자들이 알 수 없도록 보안을 유지해 주십시오.”

“첫째 둘째는 반드시 하겠는데, 셋째 조건은 언제까지 지켜질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딱 사흘이면 됩니다.”

그후 사흘 뒤 세가지 조건이 모두 이행됐다. 기자는 기자실에 타사 동료기자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백령도 장교구타사건’을 밝혔다. “우리 한겨레는 기사를 쓰지 않기로 했다. 이미 조치가 됐고, 본인들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기사를 쓸 경우 적어도 3명의 고급장교들이 군복을 벗거나 치명적인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동료기자 누구도 기사를 쓴 사람은 없었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부대 안 구타사건이 끊이지 않는 주 원인은 사건을 은폐 조작하기에 급급하며 대책마련에는 뒷짐 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6.25와 베트남전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귀신 잡는 해병’이란 명성도 떨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 반세기 훨씬 전의 과거의 영광에 머물며 안주하는 사이, 곱디고운 청춘들은 구타의 공포 속에서 백령도 짓푸른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고 있다.

‘절대 계급사회’인 군대에선 최고 지휘관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가 부하 장병들을 내 자식, 내 조카처럼 여긴다면 구타는 지금의 반의 반으로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지휘관들이 결단하고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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