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피플’ 미얀마 로힝야족의 미래, 아웅산 수치 손에 달렸다
[아시아엔=김아람 기자] 25년만에 지난 8일 열린 미얀마 자유민주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지난 53년간 이어져 온 군부독재가 막을 내리게 됐다. NLD는 상하원 전체 의석의 절반인 348석을 확보함으로써 내년 초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뽑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다만 헌법에 의해 전체 의석의 4분의1은 군부에 할당된다.
영국인 남편과 결혼해 자녀를 둔 아웅산 수치 여사는 ‘외국인 배우자 혹은 자녀를 둔 자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금지’하는 법 때문에 직접 후보에 나설 수는 없다. 그러나 수치 여사는 “NLD가 승리해 대통령을 당선시키면 자신은 대통령직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미얀마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덕분에?현재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로힝야?족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얻었다. 미얀마 내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수십 년간 불교극단주의자들의 상습적인 차별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각지로 망명해 살고 있는 실정이다. ‘인권’이나 ‘투표권’은 이들과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민주화의 길을 연 것은 기쁜 일이지만, 말레이시아에 남아있는 로힝야인들은 시민권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로힝야 인권보호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자파르 아마드 대표의 말이다. 그는 “로힝야 시민권 문제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손에 달린 셈”이라며 “그가 로힝야를 보호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해준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 여사는 현재까지 로힝야족에 대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라히물라 말레이시아 로힝야자문위원회(MUR) 부위원장은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보통 선거 전에는 어떤 공약이든지 내세우는 법”이라며 “문제는 승리 이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라히물라 MUR 부위원장은 이번 선거로 군부독재가 종식을 맞은 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가장 큰 적인 군부독재가 막을 내려 기쁘지만 아직 우리의 운명은 알 수 없다”면서 “수치 여사가 앞으로 어떻게 미얀마를 이끌어 갈지 지켜볼 셈”이라고 했다.
반면 아라칸로힝야윤리위원회(ERCA)의 모흐드 라피크 위원장은 미얀마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수치 여사에 대해 “불교, 기독교, 이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며 “정권 이양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린다면 신이 우리를 돌봐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수치 여사가 그동안 로힝야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선거 전 로힝야 문제를 언급한다면 친정부세력이 이를 구실삼아 선거에 악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며 “수치 여사는 마음 속으로 항상 우리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한편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 건국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로 지난 1990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둔 바 있다. 그러나 군부가?총선 결과를 무효화한 뒤 수치 여사를 15년 동안 가택 연금하는 등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군부는 이번 총선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여 안정적인 정권이양을 약속했다. 전세계를 떠돌고 있는 18만 로힝야 난민들의 삶이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지 수치 여사의 정치적 결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