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가주석’ 시진핑, ‘반역자’ 보시라이. 그들 운명 가른 선영
[아시아엔=손건웅 풍수유람가] 시중쉰(習仲勛, 1913년 10월~2002년 5월)과 보이뽀(薄一波, 1908년 5월~2007년 1월).
시중쉰은 보이뽀보다 5년 늦게 태어나서 5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각각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현재 수감중인 보시라이의 부친이다. 그들의 아들은 이처럼 상반된 운명에 처해있지만, 그들 당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시중쉰과 보이뽀는 혁명 1세대 원로다. 특히 보이뽀는 8대 원로의 한 사람이다. 그들의 아들이 태자당으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인생역정은 닮은 점이 많다. 심지어 문화혁명 기간 중 우파로 몰려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당한 것도 그렇다. 시중쉰은 16년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보이뽀는 부인 후밍(胡明)이 홍위병의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했다. 부모와 형제가 생이별을 겪은 가족사도 너무 닮았다. 이 기간 중 16세의 시진핑은 옌안(延安)의 량자허(梁家河)라는 오지로 추방되어 육체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고,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자 그들을 비춘 희망의 햇살도 비슷했다. 시중쉰은 광동성 성장으로 발탁되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의 최일선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보이뽀는 종신직이나 다름없던 원로들의 직책에 연령제한을 하는 등의 제도개선과 경제개혁 방침의 틀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당내 위상도 그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생전에는 각자의 아들에게는 듬직한 큰 산(?山)이기도 했다. 그들의 장례식에는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문상을 하는 등 최상의 대우와 존경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부친이 별세했을 때 시진핑은 저장성 서기, 보시라이는 랴오닝성 성장으로 당내 위상도 비슷했다. 그런데 아들 대(代)의 운명의 갈림길은 부친이 떠난 후에 발생했다.
후대 앞길까지 가로막은 빠바오샨 ‘대흉’
2012년 여름, 시진핑의 행방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중국 최고권력인 정치국 상무위원과 총서기를 결정하는 18기 중앙위원회 개회시기에 맞물려 시진핑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던 시기다. 2012년 10월, 필자는 시진핑 부친을 안장한 시안(西安)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타오이춘(陶?村)으로 향했다.
2002년 5월24일 시중쉰이 베이징에서 별세하자 빠바오샨(혁명묘원)에 납골로 모셨다. 그리고 서거 3주기인 2005년 5월24일, 시진핑은 부친의 유회(遺灰)를 그의 고향인 후핑현 타오이춘(富平陶村)으로 이장했다. ‘이장한 지 7년만에 그의 아들 시진핑은 대권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그의 앞날은 순탄할까?’ 등등의 생각이 필자의 뇌리를 스쳤다.
이제 보시라이의 부모 묘소가 있는 빠바오샨 혁명공묘(八寶山革命公墓)로 가보자.
필자는 베이징을 여러 차례 다녀온 적이 있었다. 빠바오샨 공묘는 이미 간산한 바 있었지만, 이곳에 보시라이의 부모 묘소가 있다는 것은 최근 중국인터넷을 검색하다 알게 되었다. ‘풍수적 궁금증’이 발동 걸렸다.
우선 빠바오샨(八寶山)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팔보(八寶)란 8가지의 광물이 나오는 곳이어서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팔보산이라 이름했지만 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해발 130m의 구릉이니 시각적으로는 평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곳은 명청시대에 늙은 환관들이 궁에서 나와 요양을 하다 죽음을 맞이 하는 곳이었다. 1940년대 마오쩌둥, 주떠 등과 ‘5대서기’로 불렸으며 공청단(共?團)을 창설한 런삐스(任弼時·1904년 4월~1950년 10월)가 사망하자, 그를 이곳에 장사지낸 이후로 혁명공원으로 지정했다. 중국공산당 혁명에 공헌한 사람들만 안장할 수 있는 곳이다. 장소가 협소하여 근래에는 화장하여 혁명공원 내의 납골당에 봉안하는 추세다. 중국 현대사의 기라성같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풍수적으로는 도처가 흉지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시중쉰이나 펑떠화이(彭德懷)등을 비롯한 몇몇 묘소는 후손들이 고향이나 다른 곳으로 이장해갔다. 그러나 보이뽀의 묘소가 자리한 곳은 빠바오샨 묘원에서도 핵심 흉지다. 이곳에 부모를 모신 지 5년 만에, 중국정계의 스타로 촉망받던 보시라이는 대권은커녕 수인의 신세로 전락하였다.
한 사람의 아들은 국가주석에, 다른 한 사람의 아들은 영어의 신세로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시중쉰과 보이뽀 모두 화장하여 모셔도 그 장소의 길흉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달라진 사례다.